전 직원이 ‘AI 비서’ 갖도록…글린, 업무의 모든 맥락을 잇다[최중혁의 월가를 흔드는 기업들-창업가편]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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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용 소프트웨어 AI 스타트업 ‘글린’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아르빈드 제인 인터뷰
회사에서 일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고객 정보, 지난 회의 내용, 프로젝트 문서 등 필요한 자료가 분명 어딘가에는 있다. 그러나 막상 찾으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누가 최신 버전 갖고 있지?”, “권한이 안 돼서 문서가 안 열리네…”, “예전에 비슷한 고객 이슈 있었나?”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메일, 클라우드 드라이브, 회의록, 각종 애플리케이션에 정보가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문서를 다시 만들거나, 동료에게 계속 묻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의 검색 엔지니어 출신이자 ‘루브릭’의 공동창업자였던 아르빈드 제인은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글린(Glean)’을 설립했다. 글린은 회사 내부의 방대한 정보를 한곳에 모아, 직원이 필요한 자료를 마치 구글에서 검색하듯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중요한 점은 단순한 검색 서비스를 넘어선다는 것. 글린은 ‘누가 어떤 정보를 볼 권한이 있는지’, ‘이 문서가 어느 팀·어떤 프로젝트와 관련돼 있는지’ 등 조직의 내부 규칙과 맥락까지 이해한다. 그래서 직원마다 각각에게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 보여준다.
올해 6월 72억 달러의 기업가치로 시리즈F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글린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미국 뉴욕 나스닥 전광판에 나타나있다. 글린 제공 글린은 최근 여기에 ‘에이전트(Agent)’ 기능을 도입했다. 에이전트는 일종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팀 직원이 “지난 분기 우리 고객사들의 반응이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에이전트가 관련 문서를 찾아 정리하고 더 나아가 “이 내용을 토대로 다음 달 전략은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까?”라는 제안까지 해주는 식이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린의 연간 반복 매출(ARR)은 이미 1억 달러에 달한다. 올해 6월에는 세콰이어 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 코슬라 벤처스, 웰링턴,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 등 유수의 벤처캐피털 및 투자사들로부터 시리즈F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72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필자는 올해 5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컨퍼런스 ‘글린 고(Glean Go) 2025’에서 아르빈드 제인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6월에는 추가로 서면 인터뷰를 이어갔다.
글린 고(Glean GO) 2025 행사에서 열린 창업자와의 대화. 아르빈드 제인 글린 CEO(가운데)와 공동창업자 토니(왼쪽), 비쉬(오른쪽)의 모습 . 최중혁 대표 제공
‘Work AI’는 어떻게 시작됐나
글린 창업자 겸 CEO 아르빈드 제인 . 글린 제공 ― Work AI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최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업 내 활용되지 않는 내부 데이터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싶다고 느끼게 한 개인적 순간이 있었나?
“글린의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것이 아니다. 수년 동안 반복해서 마주한 하나의 답답한 문제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구글에서 ‘세상의 정보를 모두에게 접근 가능하게 한다’는 목표 아래,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노하우를 쌓아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의 내부로 들어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보는 조직 곳곳에 있었지만 무엇이 정확히 어디에 있고, 누가 접근 권한을 갖고 있으며 어떤 버전이 최신인지 알기 어려웠다. 뛰어난 인재들조차 정보를 찾느라 과도한 시간을 낭비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이는 매우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 아이디어는 분명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보가 존재함에도 정작 필요할 때 접근할 수 없다는 일상의 고통,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글린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찾고, 이해하고, 실행할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 공동창업자들과 어떻게 이 회사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글린은 2018년 말 아이디어를 구상해 2019년 초 본격적으로 시작한 회사다. 우리의 제품 비전은 매우 명확했다. 사람들의 업무 환경을 위한 ‘구글’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나와 토니(Tony)는 구글에서 수년간 함께 일하며 검색 기능을 매우 빠르게 하는 기술을 수년간 함께 연구해왔다. 비쉬(Vish)는 학창 시절부터 3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로, 검색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당시에는 페이스북의 검색 부문을 이끌고 있었다.
이렇게 세 명의 핵심 인력이 자연스럽게 모였고, 이후 구글과 메타 출신 인재들을 추가로 영입하며 공동창업팀이 완성됐다.”
도입·확장 전략 — 바로 체감 가능한 업무 효율성의 힘
― 도입 효율성은 확장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글린은 고객사가 조직 내에서 솔루션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나?
“글린은 초기부터 도입 과정을 얼마나 빠르고 매끄럽게 만들 수 있는가에 집중해 왔다. 대부분의 고객사는 몇 달이 아니라 단 며칠 만에 서비스 구축을 완료하고, 곧바로 가치를 체감한다. 이는 글린이 구글 워크스페이스, 마이크로소프트 365 등 기업들이 이미 사용 중인 도구들과 즉시 연동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커스텀 훈련이나 장시간의 도입 과정도 필요 없다. 글린은 애초부터 확장성을 전제로 설계한 플랫폼이다. 빠른 인덱싱 파이프라인, 고성능 검색, 정교한 권한 체계 등 핵심 요소를 자체적으로 최적화해 수십억 개의 문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만들었고, 일시적 권한 부여나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제한과 같은 특수 상황까지 고려한다. 따라서 고객 조직이 50명이든 5만 명이든 관계없이, 글린은 즉시·정확·안전하게 작동한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도입 직후부터 업무 효율성과 성과 개선 효과를 바로 체감하게 된다.”
멀티 LLM 운용 — 지연·비용 최적화의 비결
― 여러 개의 LLM(대형 언어 모델) 제공업체의 모델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시간 응답이 필요한 환경에서 속도와 비용은 어떻게 관리하나?
“각각의 LLM이 모든 작업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모델을 병행해 사용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글린 에이전트’는 이 접근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으로, 에이전트의 각 단계에서 가장 적합한 모델을 자동으로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에이전트의 품질, 속도, 비용 간의 균형을 단계별로 최적화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응답해야 하는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는 지연 시간(latency)이 핵심 요소다. 글린은 빠른 검색부터 경량화된 에이전트 실행까지 전체 스택을 최적화해 대기 시간을 최소화한다. 또한 글린은 자체적으로 강력한 검색·인덱싱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적은 수의 토큰으로도 정확한 답을 도출할 수 있다. 덕분에 응답 속도는 빨라지고 비용 효율성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 자체 AI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 있는가?
“LLM 자체를 새로 개발하기보다는 그 위에 지능화 레이어(intelligence layer)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고유한 데이터, 권한 체계, 워크플로우를 깊이 이해해 반영함으로써, 정확하고 안전하며 실행가능한 결과를 제공하는 일을 의미한다. 글린의 가장 큰 강점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글린은 모델 비종속적 아키텍처(model-agnostic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상황에 맞는 최적의 모델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확장할 수 있다. 우리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새로 만들려 하기보다, 그 위에서 실제 업무에 작동하는 지능을 구축하고, 무엇보다 고객에게 신뢰할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급 AI를 통해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금융·의료처럼 규제가 강한 산업에서 GDPR·HIPAA 등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어떻게 준수하나?
“글린은 처음부터 엔터프라이즈급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에 두고 설계된 플랫폼이다. GDPR(유럽 개인정보보호법)과 HIPAA(미국 의료정보법) 등 주요 데이터 보호 규정 준수는 기본이고, 데이터 주권(data residency)과 데이터 최소화 원칙 또한 엄격히 지킨다. 이를 위해 글린은 강력한 기술적 통제, 데이터 위치 지정 옵션, 엄격한 접근 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명시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한, 글린은 콘텐츠 데이터를 고객 환경 외부에 저장하지 않으며, 기존 조직의 접근 권한 체계를 그대로 존중한다. 또한 세분화된 접근 통제, 감사 로그, 역할 기반 접근 제어(RBAC) 등을 제공해 금융, 의료, 기술 산업처럼 규제가 많은 분야의 규정 준수 요건을 충족한다.
글린은 정기적으로 보안 감사를 받고 있으며, SOC 2 Type II 및 ISO 27001 인증 등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국가나 지역을 불문하고, 고객에게 일관된 수준의 보안과 데이터 거버넌스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 원칙이다.”
• RBAC(Role-Based Access Control): 역할별 권한에 따라 데이터 접근을 제한하는 보안 모델
― 경쟁사인 코히어나 다른 엔터프라이즈 AI와 비교했을 때, 글린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글린의 핵심 가치는 ‘문맥(context)’에 있다. 단순히 RAG 성능이 뛰어나다는 수준을 넘어 기업 안의 사람, 문서, 대화, 권한 체계. 업무 흐름을 하나로 엮어 실제로 일을 끝낼 수 있게 돕는 AI라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글린은 다양한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에 네이티브하게 연결되고, 조직 구조와 권한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표출한다. 여기에 에이전트 기능이 결합되면서 단순한 ‘답변’을 넘어, 실행 가능한 액션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점이 글린만의 차별화 지점이다.”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사내 문서 등에서 관련 자료를 먼저 찾아(Lookup), 답변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
글린 고 2025‘ 행사장 내부의 모습. 최중혁 대표 제공 ― 지금까지는 주로 기술·금융·컨설팅 기업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앞으로 다른 산업으로도 확장할 계획이 있나?
“초기에는 기술기업이나 지식근로자 비중이 큰 조직에서 도입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지금은 금융, 헬스케어 제조 등 규제가 엄격하고 문서·프로세스가 복잡한 산업군으로 매우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규모로 보면 수백~수천 명 이상의 중대형 조직에서 즉시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앞으로는 에이전트 기반 자동화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중견기업군에서도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 법무·금융·엔지니어링처럼 특정 분야에 특화된 수직형 AI와 경쟁할 때는 어떻게 접근하나?
“우리는 기능별 ‘베스트 오브 브리드’ 수직 솔루션과 정면으로 경쟁하기보다, 그들이 더 잘 작동하도록 만드는 기반 플랫폼에 가깝다. 글린은 기업 전반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과제(문서·대화·시스템 전반의 맥락 수집, 권한 보존, 검색·이해·실행)을 해결하고, 각 수직 앱들이 자신의 전문 워크플로우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연결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경쟁 상대로 보기보다, 생태계적 보완 관계로 본다.”
― 챗GPT나 퍼플렉시티 같은 대형 플랫폼이 기업용 시장에 진입하고, RAG 같은 기술이 보편화되면 어떻게 차별화할 계획인가?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문맥’이다. 모델이 동일하더라도, 사람·문서·권한·프로세스의 맥락을 얼마나 정교하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글린은 보안성·규제 준수·개방성을 기본 설계 철학으로 삼고 있으며, 기업의 조직 구조와 워크플로우를 이해해 실제로 일을 끝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것이 범용 모델 시대에도 글린이 차별화되는 이유다.”
―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 있나?
“우리는 이미 서유럽, 호주, 뉴질랜드뿐 아니라 싱가포르·일본·인도 등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외 시장 확장을 지속할 계획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은 현재 당사 매출에서 동종 단계의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향후에도 아시아는 핵심 전략 지역이 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글린의 초기 해외 진출 시장 중 하나였고, 첫 진출국은 일본이었다. 한국의 경우 현재 일부 고객이 있으나 아직은 초기 단계다. 일본에서는 강력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많은 고객사를 소개받으며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던 만큼, 한국 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기회를 갖게 되길 희망한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필자(최중혁)는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삼성SDI America, SK Global Development Advisors 등을 거쳐 미 실리콘밸리 소재의 사모펀드 팔로알토캐피탈(Palo Alto Capital)을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트렌드를 알면 지금 사야 할 미국 주식이 보인다’ ‘2025-2027 앞으로 3년 미국 주식 트렌드’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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