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부터 500장이 넘는 음반을 제작한 영국 출신의 세계적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는 “케이팝은 10대 여성의 취향에 타깃이 고정된 것 같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 “싸이? 내 스타일 아니지. ‘강남스타일’ 같은 히트는 앞으로 힘들걸. 아이돌? 내 아이돌은 프랭크 램퍼드와 존 테리(첼시 선수들)라고. 난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싫어.” 10일 서울 서교동, 12일 강남구 신사동에서 두 차례 만난 스티브 릴리화이트(58)는 그가 제작한 U2의 히트 곡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1983년) 같았다. 간결하지만 호방한 악기들의 음향이 드넓은 시간의 평원을 경기병처럼 내달리는…. 》
그는 U2의 사운드를 결정지은 초기 앨범들(‘보이’ ‘악토버’ ‘워’)부터 롤링 스톤스, 제이슨 므라즈, 킬러스까지 다양한 명작을 지휘한 프로듀서다. 독설, 유머, 공포영화의 악역처럼 호들갑스레 터뜨리는 웃음…. 그는 한때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 후임 심사위원으로도 거론됐다. 5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타고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은 그는 영국 음악지 NME가 꼽은 역대 최고의 프로듀서 50명 중 한 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연 제2회 뮤콘(서울국제뮤직페어·10∼12일)에 참가한 릴리화이트는 세계적인 기타 제조사 펜더의 후원을 받아 한국 뮤지션 한 팀을 뽑아 이르면 다음 달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스튜디오로 데려가 함께 녹음할 계획이다. 후보군을 서너 팀으로 압축한 그는 12일 신사동 클럽에서 한국 음악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릴리화이트는 “U2처럼 팝 음악계에 새로운 물꼬를 터 줄 밴드를 찾으려 요즘 아시아를 집시처럼 떠돈다”고 했다.
―한국 음악을 들어 보니 어땠나.
“난 영미권에서 오래 살았고, 나이가 들고 있다. 날 흥분시킬 음악이 필요하다. 내가 다른 문화권을 찾은 이유다. 한국 전통음악과 록을 결합한 ‘잠비나이’, 독특한 록을 들려주는 ‘3호선 버터플라이’, 1980년대 영국 팝의 영향을 재해석한 ‘글렌체크’ 같은 팀은 놀라웠다.”
―요즘 세계 록 음악계의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마룬5라든가….
“마룬5가 상업적 성공을 위해 다른 이들과 비슷한 스타일로 변했다는 게 좀 슬프다. 초기에 그들은 정말 좋은 밴드였다. 예술가는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
―낯선 한국의 인디 밴드 앨범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난 뮤지션의 가장 작은 의견과 아이디어라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다. 최근 콜롬비아 밴드 후아네스와의 작업도 그랬다. 나와 함께 한 데이브 매슈스 밴드, 킬러스, 서티 세컨즈 투 마스도 모두 인디 출신이다. U2마저도. 아직도 난 작지만 위대한 밴드를 찾는다.”
―싸이나 케이팝에는 관심 없나.
“싸이는 열정이 대단하고 음악도 나쁘지 않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내가 프로듀서라면 마일리 사이러스(미국 청춘 스타)와 듀엣을 시켰을 텐데…. 싸이러스(Psyrus)! 어때, 죽이지? 캬캬캬캬캬캬.”
―마돈나를 발굴한 시모어 스타인은 최근 한국 밴드 노브레인과의 계약을 발표했다.
“노브레인, 좋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난 목소리를 듣는다. 난 로맨틱한 사람이다. 아무리 격한 음악이라도 보컬 목소리만 로맨틱하다면 좋다. 보노(U2의 보컬) 역시 그랬다. 그는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
―다른 아시아 음악과 한국의 음악을 비교한다면?
“중국에서는 대단한(great) 밴드를 보지 못했다. 한국 음악은 아시아를 이끌고 있다. 아이돌 음악도 정체돼선 안 된다. 팝이 청자(聽者)를 유지하는 방법은 그들과 함께 커 가는 것이다. 더 세련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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