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간 최고의 라이벌’ 헨리 8세의 여인이 된 자매

  • 입력 2008년 3월 11일 02시 54분


‘천일의 스캔들’ 주연 내털리 포트먼 vs 스칼릿 조핸슨

16세기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는 매혹적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혼한 뒤 영국 국교회를 만든다. 그 후 약 1000일간 왕비 자리에 있던 앤은 졸지에 참수당한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1000년간 최고의 스캔들’로 이름붙인 이 역사 뒤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더 있다. 앤의 자매인 메리도 헨리 8세의 정부였고 두 아이까지 낳았다는 것.

필리파 그레고리의 소설 ‘디 아더 불린 걸’을 원작으로 한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영화 ‘천일의 스캔들’(20일 개봉)은 헨리 8세를 사이에 둔 자매의 갈등을 그린 시대극. 가려졌던 인물 메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영화가 더 흥미로운 이유는 할리우드 톱스타인 스칼릿 조핸슨(23)과 내털리 포트먼(26)이 함께 출연한다는 점이다. 조핸슨은 순수하면서 관능적인 메리를, 포트먼은 도도하고 권력 지향적인 앤을 맡아 상반된 매력을 보여준다. 미국 NBC방송, 영국 통신사 프레스 어소시에이션,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 나온 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 영국 역사 속 두 뉴요커

포트먼은 이스라엘 출신이지만 뉴욕에서 오래 살았다. 조핸슨은 뉴욕에서 덴마크계 아버지와 폴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자랐다.

“역사 시간에 헨리 8세에 대해 배운 것은 이혼하고 참수형에 처하고, 또 이혼하고 참수시키고…. 그게 전부죠. 내털리와 나 때문에 젊은 세대가 이 시기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아요. 튜더 왕조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드라마예요.”(조핸슨)

당시 화려한 드레스는 영화의 볼거리이지만, 배우들에겐 골칫거리였다.

“입으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조각상이 된 기분이죠. 주변 사람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정도니…. 그 시대 여성에게 가해진 제한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줬어요.”(조핸슨)

‘누구의 여자인지’가 여성 지위의 전부이던 때. 영화 속 여성들은 집안의 권력 쟁취를 위한 ‘상품’이다.

“어려서부터 그런 가치를 주입받은 아이들은 자라서 권력과 부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죠. 앤이 그 전형이죠.”(포트먼)

메리는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앤은 왕비의 자리만 원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은 마치 한 인간의 양면처럼 보인다는 것에 두 배우는 동의했다.

“둘을 합치면 헨리에게 완벽한 짝이 됐을 거예요.”(조핸슨)

○ 우정과 경쟁 사이

두 배우는 함께 일하게 된 것에 대해 “참 좋았다”고 말했지만 경쟁심도 내비쳤다.

“무척 흥분됐어요. 존경하는 또래 여배우와 함께 일하는 것은 흔치 않으니까. 이 여배우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준비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굉장한 기회였죠.”(포트먼)

조핸슨은 “포트먼의 오랜 팬이었고 그 때문에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포트먼의 대사가 몇 줄인지 일일이 세어 봤다고 한다. 계약상 둘의 비중이 비슷해야만 했기 때문이라나.

○ 스타로 산다는 것

1994년 아역배우로 출발했는데도 조핸슨은 아직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는 최근 미국 잡지의 코 성형 수술 보도를 강하게 반박했다. “검사해 보라고 해요. 전 정말 안했거든요!”

포트먼은 미국에서 ‘소녀들의 역할 모델’로 손꼽히지만 스스로는 “나는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부 젊은 스타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사생활을 보장하세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사회가) 타인의 어려움을 즐긴다는 것이에요.”

○ 정치 성향은 달라요

최근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와의 약혼설에 시달린 조핸슨은 기자들의 질문에 “버락 오바마와 약혼했다”는 농담으로 맞섰다. 그는 오바마 지지자다. 포트먼은 연예인들의 선거 참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에게 투표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글로리아 스타이넘(미국의 여성운동가)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 내가 힐러리를 지지하도록 영향을 줬어요.”

포트먼은 하버드대 출신으로 늘 똑부러지는 스타일이다. 혹시 출마할 생각은 없을까?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지만 나쁘진 않네요. 앞으로 5∼10년은 아니에요. 전성기가 지나 할리우드에서 일하기가 힘들어지면 모를까.”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자매 이야기 사실일까

메리가 앤보다 먼저

헨리 8세의 정부 돼

헨리 8세와 앤의 이야기는 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앤의 동생 메리의 존재를 전면으로 부각시킨 영화는 ‘천일의 스캔들’이 처음이다.

영화에서는 헨리 8세(에릭 바나)가 앤의 동생인 메리에게 먼저 반해 그를 시녀로 왕궁에 불러들인다. 이때 메리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이후 메리는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지만 헨리 8세는 다시 앤의 유혹에 넘어가 메리를 버린다. 그리고 앤은 왕비가 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자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는 ‘천일의 스캔들’에 대해 “메리가 앤의 동생인지 언니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요즘 학자들은 언니일 것으로 추측한다”며 “메리가 앤보다 먼저 헨리 8세의 정부였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는 두 아이를 낳았는데 이들이 헨리 8세의 아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메리는 영화처럼 유부녀로서 왕의 연인이 됐으며 아들을 낳았다. 출산 즈음에 왕과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또 “영화의 원작인 필리파 그레고리의 소설은 메리를 부각시키려고 앤을 부정적으로 그려 논란이 많았으며 어디까지나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에서도 앤은 아름다운 얼굴에 재치 있는 언변과 비상한 머리까지 갖춰 남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요부로 나온다. 실제로 아들을 유산한 뒤 결혼한 지 3년 만에 처형당했다. 근친상간을 이유로 참수당했다. 사학자들은 이를 누명으로 보고 있다.

튜더 왕조(1485년 헨리 7세 즉위∼1603년 엘리자베스 1세 서거)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책을 통해 계속 반복됐다. 헨리 8세와 앤 불린(리처드 버튼 주연의 ‘천일의 앤’, 미국 드라마 ‘튜더스’), 헨리 8세와 첫 왕비 캐서린 사이의 딸로 ‘블러디 메리’라 불렸던 메리 1세 (필리파 그레고리의 소설 ‘블러디 메리’), 앤 불린의 딸로 영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군주인 엘리자베스 1세(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엘리자베스’) 등.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튜더시대에는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들이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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