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거짓말 방송’ 일본은 난리인데…

  • 입력 2007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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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발효시켜 만든 전통식품 낫토(納豆) 때문에 최근 일본 열도가 두 번 들썩였다.

첫 번째 소동은 7일 공중파인 후지TV계 간사이(關西)TV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낫토의 다이어트 효과를 소개한 직후 일어났다. 전국 슈퍼마켓에서 낫토가 품절돼 버린 것.

방송은 낫토 속의 성분이 ‘DHEA’라는 호르몬을 만들어 내 다이어트 효과가 높다고 미국인 연구자의 말을 인용해 소개했다. 20∼50대 피실험자 8명에게 2주간 아침저녁으로 낫토를 먹게 한 결과 최고 3.4kg이 준 것을 비롯해 전원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데이터도 소개됐다.

그러나 2주도 지나지 않은 20일, 방송사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내용이 날조됐다”며 시청자 앞에 고개를 숙였다. 방송사는 실험 데이터와 사진, 전문가 코멘트까지 모두 6군데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판명됐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한 주간지의 취재가 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네? 거짓말이었다고요?”

프로그램을 믿고 매일 낫토 먹기를 실천해 온 일본인들은 “이래서야 다른 방송도 믿을 수 있겠느냐”며 분노했다.

외주로 제작돼 온 이 프로그램은 매주 미용과 다이어트, 건강을 소재로 과학적인 검증 실험을 해 인기가 높았다. 방송사 측은 21일 예정된 방영을 취소하고 프로그램 폐지까지 검토할 예정이다. 담당 부처인 총무성도 22일부터 방송법 위반 조사에 들어간다.

한국에서도 최근 유사한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공영방송 KBS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거짓 사연을 말한 사람이 노래자랑대회의 우승자가 된 것을 비롯해 출연자의 거짓말이나 연출 조작 사례가 부쩍 잦다.

양국의 조작 사례에는 유사점이 적지 않다. 제작을 하청업체에 맡겼고, 외부의 지적을 받은 뒤에야 진실을 밝혔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 시달린다는 점까지 쏙 빼닮았다.

다만 일본에선 즉각 해당 프로그램의 방영이 중단되고 ‘극약처방(퇴출)’까지 논의된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되거나 ‘사과방송’으로 끝나는 한국과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한국 시청자들이 덜 분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방송사가 시청자를 무시하는 걸까. 조작도 문제이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방송사의 책임 있는 사후조치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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