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쇼 프로서 프러포즈…“정말로 저러는 걸까” 갸우뚱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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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해피선데이’의 ‘자유선언-주먹이 운다’. 사진 제공 KBS
KBS ‘해피선데이’의 ‘자유선언-주먹이 운다’. 사진 제공 KBS
“가장 행복한 순간 귀에서 종소리가 들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너를 처음 보는 순간 그 종소리가 들렸어. 이제 네 마음의 종소리를 듣고 싶어. 나의 마음을 받아줘∼.”

말이 끝나자 남자는 꽃을 바치며 무릎을 꿇는다. 프러포즈를 받은 여성은 갈등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웃으며 꽃을 받아든다. 멜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16일 방영된 KBS ‘해피선데이(연출 이훈희)’ ‘자유선언-주먹이 운다’ 코너에서 한 남학생이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 ‘주먹이 운다’는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이 친구, 선생님, 좋아하는 이성 친구를 무대 위로 불러내 속마음을 고백하게 하는 코너다. 고등학생들의 솔직담백한 모습이 마음을 울리지만 시청자들은 한편 “진짜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공 공식 ‘R-H(Reality & Humanity) 전법’

지상파, 케이블방송 할 것 없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왜 그럴까? 방송 관계자들은 △갈수록 강도 높은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훔쳐보기 심리(TV 관음증) 자극 △저렴한 제작비 △‘실제’를 강조하면 시청자들의 감정을 쉽게 동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성행하며 제작 일선에서는 “뜨기 위해 ‘R-H 전법’을 사용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인간애(愛)를 자극하는 소재를 최대한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어머니와의 포옹 등 감동적인 장면은 △출연자들의 얼굴 표정을 강조한 촬영 △6mm카메라를 이용해 거칠게 찍는 아마추어적 기법 △일순간 감정을 끌어올리는 장중한 음악 삽입 등의 기법을 동원해 촬영, 편집된다.

촬영 내용을 출연자들에게도 비밀로 해 이벤트 순간, 감정이 최대한 드러나게 하는 것도 기법. 회사원 박치훈(32) 씨는 “머리로는 시청자 울리려고 만든 뻔한 도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나는 건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너무 리얼해서 조작 같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범람하자 시청자들은 정말 ‘리얼’한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미국 시청자의 82%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완전히 가공됐거나 크게 왜곡됐다고 본다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 회사원 윤현구(28) 씨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리얼’이라기보다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포맷’으로 제작된 프로그램 같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은 리얼리티 부문을 오히려 삭제하는 경우도 만들었다. 고등학생들의 연애 고민을 상담해주는 MBC ‘토요일’ ‘순정만화’는 남녀 고등학생의 연애 에피소드를 리얼리티 형식으로 촬영해 방송하다가 최근에는 박경림, 성시경이 에피소드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시청자들의 부담감이 원인.

문화평론가 김헌식(32) 씨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방송인 만큼 연출적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반복적으로 감동이 강조되는 것은 감정의 과잉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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