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인사이드]스크린속 ‘감독’ 찾기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7시 35분


12월 5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낭만자객’의 엔딩 장면. 처녀 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늘어선 장군 귀신과 졸병 귀신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저 뒤편에 윤제균 감독의 얼굴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윤 감독의 영화출연은 미리 예정된 것이 아니라, 촬영현장에서 즉석으로 결정됐다. ‘색즉시공’으로 윤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배우 임창정이 ‘카메오’(깜짝 출연)를 위해 촬영현장을 찾은 날. 윤 감독은 그에게 장군 귀신 역을 부탁했다. 그런데 장군 하나만으로는 좀 허전해 보인다며 졸병귀신들을 동원하기로 했다. 결국 프로듀서, 의상팀장 등 여러 스태프들과 함께 윤 감독이 잠깐 얼굴을 비치게 된 것.

영화 ‘황산벌’에서도 이준익 감독(사진)이 몰려드는 신라군들 앞에서 힘차게 북을 치는 백제 병사 역으로 얼굴을 비친다. 이 영화는 많은 인원이 필요한 역사물인지라 남자 스태프들은 전부 ‘갑옷 한번씩 다 입었다.’ 이 감독도 ‘동고동락’의 의미로 출연했다.

최근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에 잠깐씩 얼굴을 내비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올 들어 개봉된 ‘남남북녀’에서는 정초신 감독이 중국 옌볜 나이트 클럽 DJ역으로, ‘불어라 봄바람’에서 장항준 감독은 서점주인 역으로 모습을 비쳤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경우 여주인공이 짝사랑하는 투수 역으로 용이 감독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카메라 앞에 선 영화감독들의 원조격은 스릴러 영화의 거장 히치콕.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영화에 한 장면씩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관객이 영화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도록 영화 앞부분에 잠시 출연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이에 비해 국내 감독의 카메오는 주로 코미디 영화들에서 볼 수 있다. 진지한 영화에서는 감독의 서툰 연기가 극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네월드 정승혜 이사는 “감독들은 ‘내 영화야’ 라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한 컷 출연하거나 영화의 잔재미를 위해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물론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촬영현장에서 고생하는 배우들의 역할을 체험해 배우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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