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교육방송의 제자리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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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출범 후 우리 TV가 보이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로 ‘신문 공격하기’가 가열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 정권에서는 MBC가 가장 적극적이더니 이 정부 들어서는 KBS가 선봉에 나섰다. 언론학자들은 이제 방송의 전통적인 교육 오락 기능 외에 ‘신문 비판’ 기능을 새롭게 추가해 세계 언론학회에 보고해야 할 상황이라고 꼬집는다. 그야말로 한국적 기현상(奇現象)이기 때문이다. 선진 외국의 언론인들은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는 신문이 어째서 방송의 공격 대상이 돼야 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슬프게도 비판적 신문은 이제 한국 방송들의 ‘일용할 양식(糧食)’이 되고 있다.

▷한국 방송의 이 같은 ‘신문 때리기’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라는 분석도 있다. 1980년대 대통령이 외국 순방에 나서거나 정책을 발표할 때면 ‘입맛에 맞는’ 코멘트를 해 줄 인사들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던 방송기자들이 생각난다. 대학가에서 방송사 차량은 돌팔매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지금 방송사의 국장급 또는 부장급 간부인 그들은 ‘자신들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정말로 망각했을까. 현재의 한국 방송이 다음 정권에서는 또 어떤 참회록을 쓰면서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사과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최근 들어 교육전문 공영방송인 EBS까지 ‘미디어 바로보기’라는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신설해 ‘신문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그간 EBS의 격조 있는 교양 프로그램과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를 사랑해 왔던 시청자들을 당혹케 하는 일이다. 특정 신문에 대한 왜곡과 비난, 그리고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한 진행자들의 설익은 입장 표명으로 일관한 지난주의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0.2%에 불과했다. EBS는 지금까지 두 번 방송된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미디어 편향되게 보기’나 ‘미디어 거꾸로 읽기’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방송의 ‘미디어 교육’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디어 제작과정이나 매체의 특성에 대한 이해 및 매스컴에 대한 합리적 선택과 이용에 맞춰져야 한다. 더구나 EBS는 300억원가량의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공영 교육방송’으로 미래의 한국을 짊어지고 갈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 줄 책무를 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EBS의 ‘잘못된 선택’은 스스로의 존립 근거에 대한 자기 부정이며, 시청자들을 만만하게 여기는 오만이다. EBS는 하루속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옳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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