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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7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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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하고 있는 3D대신 2D로 제작된 이 게임의 주인공은 '위소보'다. 그는 기원의 점소이(지금으로 치면 고급 술집의 웨이터 정도?)로 행동보다는 말만 앞세우는 건달이다. 게다가 어찌나 입이 거칠고 욕을 잘하는지 주위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 매끄러운 혓바닥과는 달리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황궁에 들어가게 된 위소보는 청나라 황제인 강희제의 심복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위소보는 강희제의 심복인 동시에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다시 세우자는 '반청복명회'의 회주 진근남의 제자. 그래서 강희제와 진근남 사이에서 이중 간첩 노릇을 하며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위소보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심각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김용의 여타 소설들과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 설정과 많은 여인들과의 사랑 얘기가 게임의 재미를 더한다.
'의천도룡기'나 '신조협려' 같이 유명한 소설을 게임화한 작품들은 얼마나 소설의 세계를 잘 표현했는가하는 것이 게임의 재미를 좌우한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게임성보다는 게임속에서 느낄 수 있는 원작의 감동을 찾는 재미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녹정기2>는 '신조협려'나 '소호 강호'보다 탁월하다. 조잡하게 번역된 지금까지의 무협게임과 다르게 잘된 한글화 덕분이다. 그래서 소설 <녹정기>를 읽지 않았더라고 게임에 빠져들 수 있다. 어설픈 3D로 조잡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깔끔하게 2D로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롤플레잉 게임으로 제작된 <녹정기2>는 고전적인 턴 방식의 전투를 채용했다.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공격한다는 얘기다. '액티브 배틀'을 사용해 시간에 쫓기는 전투를 벌이는 '파이날 판타지'와 반대되는 형식. 그래서 초보자라도 전투방법을 배우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전투의 박진감이 떨어진다. '게임아츠'의 간판작인 '그란디아'처럼 전투장면을 동영상으로 채워 넣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만이나 중국에서 발매하는 롤플레잉들은 일본식 RPG의 대명사인 '파이날 판타지'와 닮은꼴이다.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나 전투 방식이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번에 발매된 <녹정기2>도 '파이날 판타지'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탄탄한 스토리 구성으로 조금만 진행하다 보면 게임에 푹 빠질 수 있다.
<녹정기>는 중국에서 만든 게임답게 게임의 세계관이 잘 짜여져 있다. 보통의 롤플레잉에서 사용하는 MP(Magic Point)의 개념을 내공이라는 무협의 요소로 대치했다. 이계의 몬스터를 불러 적과 대적하는 소환술 대신 '초식'이나 '무공'을 도입하는 등 무협게임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녹정기2>의 매력이다.
<녹정기2>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소호강호'나 '절세풍운'등과 비교해 보면 잘 만든 게임이다. 스테이지마다 감미로운 현악기의 배경음악이 흐르고 게임을 읽어(Loding)들일 때마다 보여주는 일러스트들도 기존 중국게임들보다 좋은 점들이다.
하지만 그래픽은 게이머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지금까지 소개됐던 무협게임들에 비하면 깔끔하게 디자인된 캐릭터지만 아직 미흡하다. 그러다 보니 감정이입이 어려워지고 자연히 멀어지게 되는 것이 <녹정기2>를 포함한 무협게임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닌가 한다. 유통사들의 무성의한 한글화도 게임의 재미를 떨어뜨리는데 한몫 한다. 엉터리로 배열된 어순하며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문구들로 게임 패키지를 장식해 게이머를 우롱하기도 한다.
롤플레잉 게임은 순간 순간의 게임성에서 재미를 찾는 액션 게임과 달리 오랜 시간을 진행해서 얻는 성취감이나 몰입감에서 재미를 찾게 된다. 따라서 스토리가 롤플레잉 게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기 때문에 중국의 게임들은 유리한 점이 많다. 유명한 소설들을 훌륭한 게임소재로 쓸 수 있어서다. 그러나 아직은 미숙한 점이 많은데 이번에 소개한 <녹정기2>도 부실한 게임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눈에 보이는 조잡한 점을 인정하면서 롤플레잉 본연의 재미를 찾게 된는다면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게임의 세계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용구<동아닷컴 객원기자> kyk5755@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