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다리가 있는 풍경'-유신시대 한 가정의 애증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9시 11분


27일 밤 11시 방영되는 KBS2의 TV문학관 ‘다리가 있는 풍경’(이민홍연출, 박언희 극본)은 소설가 전경린의 단편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이 원작이다.

그러나 ‘다리가…’는 원작의 삼각관계 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삼되 70년대 초 시골 마을에까지 스며든 유신체제의 암울한 시대상과 좌절한 지식인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원작에 없는 부분을 상당 부분 추가했다.

동요 ‘산토끼’를 유신 찬양 가사로 바꾼 ‘산토끼 유신가’를 아이들이 배우는 장면이나 민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방에 내려온 서울 관리를 접대하는 부분 등은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 드라마는 20여년만에 고향을 찾은 30대 중반의 프리랜서 사진작가 인혜(도지원)가 마을 앞의 낡은 다리를 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뒤 시골 군청 계장으로 묻혀 사는 엘리트 아버지(하재영)와 초등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한 어머니(이휘향)는 그럭저럭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어느날, 마을 앞 다리를 곱고 우아한 문계장(지수원)이 건너오면서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대학후배이자 옛 사랑이었던 문계장이 같은 군청에 근무하게 되면서 아버지는 숨이 막힐 것 같은 현실에 숨통을 트여주는 ‘동지’를 만나게 된 것.

어린 인혜 눈에 비친 문계장은 피아노도 잘 가르쳐주는 상냥한 선생님이지만 어머니는 문계장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싫어한다. 딸만 넷을 낳은 뒤 다섯째 아기를 임신한 어머니는 아들을 낳아 아버지의 마음을 붙잡겠다는 희망을 품지만 문계장 역시 임신한 사실을 알게되고….

‘다리가…’는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화면을 보여준다. 다리밑 개울에 비친 그림자 등 세밀한 곳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해외 TV페스티벌 출품을 겨냥, 대사와 효과음, 음악 등을 각각 분리해 작업함으로써 빗소리, 물소리 등이 깨끗하게 전달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시골 촌부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낸 이휘향과 어린 인혜역을 맡은 김가영의 연기가 돋보인다. 단풍이 든 잔잔한 늦가을 풍경은 전북 순창과 경남 함양에서 촬영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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