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출신 기자가 본 드라마 '카이스트'

  • 입력 2000년 6월 27일 18시 26분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는 정말 드라마 ‘카이스트’와 똑같나요?”

어느덧 장수 프로그램이 된 SBS 드라마 ‘카이스트’가 시작되고 나서 기자가 수없이 받은 질문이다.

“정말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부터 “채림같이 예쁜 여학생도 있느냐”까지. 단지 기자가 카이스트 학부 출신(98년 화학과 졸업)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

궁금증 해소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대답이라 미안하긴 하지만, 실제 카이스트와 드라마 ‘카이스트’는 닮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카이스트’ 1부 주인공들의 삶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정도로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6월4일 새로 시작된 ‘카이스트’ 2부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 ‘이카루스’와 ‘장이’라는 동아리는 실재하지만 엘리트와 열등생으로 나뉘어 패싸움을 하는 ‘드라마적’인 일은 없다는 점에서 화가 날만큼 다르기도 하다.

우선 경험상 기자의 주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것부터 설명하자면, 드라마 ‘카이스트’에 자주 나오는 기숙사의 실제 모습은 드라마처럼 호화롭지 않다. 드라마 세트 크기의 반 또는 3분의 1 정도로 상상하면 된다. 가구배치고 뭐고 신경쓸 것 없이 침대, 옷장, 신발장, 책상 두 개씩을 일렬로 놓고 나면 대여섯명이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통닭을 먹을만한 공간이 남는다.

기숙사 다음으로 가장 많이 ‘접수’되는 질문. 학내 교통정리를 진두지휘하는 ‘람보’ 아저씨와 천방지축 ‘안정훈교수님’의 존재다. ‘람보’ 아저씨는 엄연히 계신다. 넓은 캠퍼스를 휘젓고 다니기 위해 학생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장만하는데, 그로 인한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람보’ 아저씨도 생겨났다. 잔디밭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면 어김없이 아저씨의 꾸중이 날아온다. 상습적으로 걸렸던 한 친구는 30분 넘게 훈계를 들은 적도 있다.

그렇다면 ‘안정훈’같은 교수님은? 잘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없다’는 대답이 맞을 듯하다. 대학원생들이 즐겨 주고받는 ‘우리 지도교수님의 기이한 면모 이야기’를 종합해 한 사람으로 만들어낸다면 비슷할지 모르지만.

‘카이스트’ 1부와 2부는 모두 특정 동아리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는데 실제 카이스트에서도 동아리 활동이 아주 활발하다. 동아리연합회에 정식 등록된 모임만 80여개를 헤아리니 한 학년 학생이 600명도 채 못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전교생이 기숙사생활을 하다보니 동아리 활동이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록 동아리방은 누추하고 항상 모자라지만(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작업실을 상상해서는 결코 안된다. 학교 건물을 지을 때 인부들이 임시숙소로 썼던 가건물을 아직 동아리방으로 쓰고 있다) 집에 들어갈 걱정 않고 밤을 새워 모임을 가질 수 있다. 1학년 땐 과가 나누어지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카이스트 동아리는 모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최첨단’일 것이라고 짐작하면 오해다. 다른 학교마냥 대학 밴드도 있고, 문학 동아리도 있고,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동아리도 있다. 최근엔 전공과 관련된 ‘과학분과’ 동아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학생들도 이왕이면 그 쪽을 선호한다고 들었지만 과학을 전공함에도 불구하고, 또는 과학을 전공하기 때문에 더욱 다른 취미에 끌리는 학생도 많다.

드라마에선 기숙사 ‘속’ 이야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도 아쉽다. 맨 발에 슬리퍼, 허름한 츄리닝 차림의 ‘정통 기숙사 패션’을 하고 매점과 기숙사를 오가는 학생들, 방마다 깔린 네트워크로 밤새워 온라인 게임을 하느라 ‘오전 수업’이란 사전에도 없는 괴짜들, 밤마다 야식을 싣고 은밀히 기숙사 앞에 멈춰서는 배달 오토바이들(통닭과 보쌈은 ‘야참’의 양대 메뉴), 고등학교 동창들(과학고 출신이 많기 때문에 고등학교 동창이 많다) 또는 친구들끼리 벌이는 한밤의 포커판, 기숙사 방에 온갖 조리도구를 갖춰두고 아예 살림을 차리는 여학생들. 이것이 드라마에선 등장하지 않는 ‘리얼한’ 카이스트 생활이다.

그러면 카이스트 학생들이 드라마 ‘카이스트’를 보고 가장 많이 나누는 시청소감은 뭘까. 2부가 시작된 다음엔 달라졌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과학 사실’에 대한 진위였다.

예컨대 해커에 대한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나면 학교의 BBS(전자게시판)엔 ‘과연 드라마에 나온 것이 맞나’를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각계의 ‘고수’들이 떨치고 나와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하고 한마디씩 한다. “TV에 나온 해킹 화면으로 보건대 주인공은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했음에 틀림없다”고 누군가 말하면 “그러면 너무 쉽게 방어벽이 뚫리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기자는 주로 이 드라마의 배경을 본다. 이야기나 주인공과는 상관없이 정든 모교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 덕분에 “‘한국과학기술원’이 무슨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냐”는 질문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됐다.

<김명남>star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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