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영맨과 비틀스 그리고 펑크문화. 대영제국은 20세기 내내 체제반항적인 청년문화의 상징물들을 만들어 지구촌에 수출해 왔다.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그런 대중문화의 스타일과 멋을 창조해 온 대영제국이 세기말에 꺼내든 회심의 히든카드와 같은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웬만해서는 일하지 않는다. 여자친구는 없거나 헤어지기 직전이다. 인생의 목표도 물론 없다. 왜냐하면, 이게 정말 중요한데, 헤로인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크 렌튼과 네명의 친구들은 좀도둑에다 마약중독자이며, 그도 아니면 알코올 중독자 또는 단순히 미치광이들이다.
더럽고 어둡고 혼란스러운 등장인물들의 일상. 그러나 영화는 경쾌하고 박진감 넘치며 심지어 매력적이다. 대니 보일 감독은 영화의 시공간을 마치 진흙을 주무르듯 자유자재로 뒤섞어 놓는다. 화면의 구도는 파격적이며 편집은 「에드워드의 가위손」을 방불케 한다. 영상과 클래식 음악을 불협화음 처럼 사용하는가 하면 영국 펑크음악의 기인 이기팝의 곡들을 중심으로 한 현대의 팝 뮤직은 관객들을 뜨겁게 달군다.
그러나 대니 보일의 가장 큰 장기는 섬뜩한 도발과 염치 없는 장삿속이다. 마치 진흙탕을 건너온 장화를 신고 잘 정돈된 하얀 시트를 밟듯이 영화는 야비한 대사와 파격적인 영상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키고 경악시킨다. 마약 조제와 주사장면은 기본이고 인분과 오줌이 화면에 흥건하다. 14세 여고생과의 섹스는 그 절정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젊은이들의 원초적인 불안과 우울의 센티멘털리즘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대부분 중산층의 배경과 수준 높은 교육을 뽐내는 젊은이들이다. 자신의 인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이 분명한 가난하고 공부 못하고 게다가 저열한 도덕심을 가진 영화 속의 삼류 인생에 일류 관객들은 공감을 느끼며 심지어 박수를 보낸다.
이런 종류의 컬트 청춘영화의 위선과 유혹이 여기에 있다. 영화는 신나고 재미있다. 감독의 영화적 센스는 가끔 경이로울 정도다. 그러나 영악한 관객은 스크린 위에서 허덕이는 영화 주인공들의 불행을 은밀히 즐기는 관음증 환자가 된다.
강한섭<서울예전 영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