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점포 해법, 공간정책에서 찾아야[기고/류태창]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1일 00시 30분


류태창 한국지역상권학회 부회장·우송대 철도건설공학부 교수
류태창 한국지역상권학회 부회장·우송대 철도건설공학부 교수
도시는 건물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의 일상과 경제활동이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상권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지역경제의 온기를 지키고 공동체의 흐름을 이어 주며 시민의 일상을 떠받치는 생활 기반이다. 따라서 늘어나는 빈 점포는 단순한 부동산 침체의 신호로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 기능 저하의 징후이자 지역 쇠퇴의 경고음이며, 더 나아가 지역 소멸의 전조이기도 하다.

이 같은 위기는 이미 통계로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의 2025년 4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3.8%였다. 평균만 보면 아직 20%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역 격차다. 세종시는 24.1%로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충북 19.5%, 전북 18.9%, 경북 18.2%로 뒤를 이었다. 강원 원주 원도심의 중앙·일산 상권은 공실률이 32.88%에 달했다. 일부 지방 도시와 원도심에서는 이미 점포 다섯 곳 중 한 곳, 많게는 세 곳 중 한 곳이 비어 있는 상황이 현실이 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공실이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도심은 인구 유출과 소비 기반 약화로 쇠퇴형 공실이 늘고, 신도시와 택지개발지구는 수요를 충분히 따지지 않은 상업시설 공급으로 과잉공급형 공실이 누적되고 있다. 원도심은 쇠퇴로 비고, 신도시는 과잉 공급으로 빈다. 지금 한국의 상권은 두 개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비정상적 구조에 놓여 있다.

이 문제를 단지 상가 시장의 어려움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데 대응은 여전히 단편적이다. 간판 정비와 외관 개선, 한시적 창업 지원은 필요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빈 점포는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비게 되었는지, 어떤 기능이 사라졌는지, 앞으로 무엇으로 다시 채울 것인지에 대한 전략 없이 몇 개 점포를 임시로 채우는 방식으로는 상권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권은 점포의 집합이 아니라 생활권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빈 점포 문제를 자영업 지원의 일부가 아니라 국가적 공간정책의 핵심 과제로 다뤄야 한다. 먼저 신도시와 개발지구에서는 인구 규모, 배후 수요, 소비력, 주변 상권과의 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해 상업공간 공급을 사전에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주택은 수급을 관리하면서 상가는 시장에만 맡겨 두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원도심과 인구감소지역에서는 장기 공실 점포를 공공적 방식으로 재편할 필요도 있다. 공공 또는 공공이 지정한 상권관리기구가 이를 매입하거나 장기 임차해 생활서비스, 돌봄, 청년 창업, 문화와 공동체 기능으로 연결해야 한다. 모든 빈 점포를 다시 상점으로만 채우겠다는 발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어떤 지역은 상업 회복이 필요하지만, 어떤 지역은 생활 편의와 복지 기능으로 전환하는 편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아울러 조사, 등급화, 전략적 매입, 기능 전환, 임대 조정, 업종 유치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할 전담 체계도 필요하다. 상권은 단년도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할 도시 시스템이다.

빈 점포 한 칸은 단순한 공실이 아니다. 그것은 줄어든 소비이고, 사라진 일자리이며, 약해진 공동체다. 골목의 공실을 방치하면 결국 도시의 미래도 함께 비게 된다. 빈 점포 대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공공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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