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구조적 리밸런싱’과 ‘추격 매수’의 혼재: 최근의 달러 쏠림은 원화 자산 편중을 줄이려는 자산 배분 다변화의 흐름이나, 고환율 국면에서의 불안 심리에 따른 단기 추격 매수 성격이 공존함.
보유 자체가 비용인 ‘이자 없는 자산’: 달러는 이자가 거의 없고 환전 수수료와 세금 등 실질 손익분기점이 높으며, 고환율 장기화는 실질 구매력 약화와 소비 보수화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발생시킴.
수익보다 ‘통화 불일치’ 리스크 경계: 전문가들은 원화 소득 가계가 과도하게 달러 비중을 높이는 것은 ‘리스크 관리’가 아닌 ‘환율 베팅’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목적과 기간에 맞는 철저한 비중 관리를 조언함.
원·달러 환율 급등 이후 개인들의 달러 환전이 빠르게 늘고 있다. 외화 보유는 ‘방어 자산’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의 새로운 선택지가 됐지만, 달러를 쌓는 순간부터 이자 효과는 거의 사라지고 수수료·지연된 소비·체감 물가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지갑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남은 질문은 ‘살까 말까’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손해선이냐’다.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연말 이후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개인의 달러 환전 규모는 평소의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달러 매수는 매도보다 5배 이상 많아, 방어 수요와 ‘저가 매수’ 심리가 동시에 작용한 쏠림이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을 원화 유동성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본 이동과 수급, 시장 심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개인이 방향성을 맞히기보다는, 변동성 속에서 지갑 구조를 관리하는 쪽이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달러 보유의 ‘진짜 비용’. 환율이 아니라 수수료·기회비용·소비 지연이 지갑을 깎아내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같은 흐름을 두고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의 달러 보유 확대를 “단기 환차익을 노린 베팅이라기보다, 구조적 환경 변화에 따른 자산배분 다변화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저성장·고령화, 기대수익률 저하, 글로벌 자산, 특히 미국 주식 중심의 투자 기회 확대가 맞물리면서 원화 자산 편중 리스크를 줄이려는 수요가 커졌다”며 “다만 고환율 국면에서의 추격 매수와 투자 심리가 얹히는 국면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위원은 현재 개인의 달러 수요를 “구조적 리밸런싱이라는 기본 흐름 위에, 단기적인 순환적 심리가 얹힌 형태”라고 분석했다.
다만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의 외화 보유를 환율 대응용 ‘달러’ 자체로 해석하는 데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개인은 외화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외주식이나 채권 같은 ‘외화자산’을 보유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 달러는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다. 대신 수수료가 먼저 빠져나간다
달러를 쥐고 있는 동안 돈은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가치 변동을 기다리는 대상으로 성격이 바뀐다. 소비와 저축, 지출 판단이 환율이라는 외부 변수에 묶이는 순간이다.
은행 창구나 모바일 앱을 통해 달러를 환전할 경우, 소비자는 매수·매도 환율 사이의 ‘스프레드(환전 마진)’를 부담한다. 주요 시중은행의 현찰 환전 수수료율은 평균 1~2% 수준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앱을 통한 전신환이나 외화통장 거래가 늘면서, 환율 우대를 적용받을 경우 실질 비용이 0.1~0.3%대까지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강 연구위원은 “환전 스프레드, 해외투자 비용, 과세 체계를 합치면 생각보다 손익분기점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 방향성 자체보다, 비용과 기회비용이 개인에게 체감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해외 가맹점에서 결제할 경우 국제 카드 브랜드 수수료와 카드사의 해외 서비스 수수료가 함께 부과되며, 전체 비용은 결제 금액의 1% 안팎에서 그 이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환율 변동과 무관하게 결제할 때마다 일정한 비용이 누적되는 구조다. ● 환율을 움직이는 건 개인인가, 흐름인가
최근 개인의 달러 매수가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는지를 두고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강 연구위원은 “과거보다 지금은 개인을 포함한 거주자의 해외투자 흐름이 커지면서, 환율이 무역수지 같은 전통 변수뿐 아니라 자본 이동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면으로 이동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개인 수요는 환율의 근본 원인이라기보다, 글로벌 달러 강세나 금리 기대, 위험회피 같은 거시 요인이 만든 방향성을 증폭하는 요인에 가깝다”고 선을 그었다.
임 연구위원도 이와 관련해 “환율 수급은 개인 해외투자뿐 아니라, 수출기업의 본국 송금 감소와 외국인 투자 흐름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며 “특정 주체 하나로 환율 움직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환율은 개인의 선택보다 자본 이동과 글로벌 달러 흐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달러를 쌓는 순간, 소비는 늦춰진다
달러 보유가 늘어날수록 원화 유동성은 줄어든다. 이는 가계의 일상 소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여행, 가전 교체, 주거 이동 같은 비교적 큰 지출이 “환율이 더 내려가면”이라는 이유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강 연구위원은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를 두고 “수입재나 해외 서비스의 체감 가격이 올라 대체 소비가 늘거나, 소비 자체가 이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수입물가 상승이 전반적으로 전가되면 실질 구매력이 약화돼 소비 심리에도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화만 들고 있으면 불안하다는 인식이 강화되면, 원화 예금에서 외화 예금이나 해외 투자로의 이동이 더 구조화될 수 있다”며 “이때 달러 보유는 부의 효과로 소비를 늘리기보다, 불확실성에 대비한 안전 자산 성격으로 축적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 환율보다 중요한 질문은 ‘얼마를 들고 있느냐’
전문가들의 조언은 일관된다. 달러 보유의 핵심은 수익이 아니라 ‘비중’이다.
강 연구위원은 “적정 외화 비중은 소득 통화, 부채 구조, 투자 기간, 위험 선호에 따라 달라 일률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전제했다. 다만 “일반 가계처럼 소득과 지출이 대부분 원화인 경우, 외화 비중이 커질수록 리스크 관리라기보다 환율 방향성에 대한 포지션 성격이 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연구위원 역시 “해외주식의 경우 주가 변동성이 환율 변동성보다 훨씬 크다”며 “장기 투자에서는 환율보다는 기초자산인 주가와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은 개인이 경계해야 할 핵심 위험으로 ‘심리와 비용’을 꼽았다. 그는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불안 심리로 단기간에 비중을 급격히 늘리면 평균 매입 단가가 불리해지고, 특히 대출을 동원할 경우 환율이 10%만 반대로 움직여도 손실과 이자 부담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팩트필터] 달러 보유 체크리스트 ‘방어’인지, ‘손해 구간’인지 5가지로 점검하세요
목적이 분명한가: 이익을 노리는가, 환율 변동에 대비한 완충 장치인가 생활비와 분리됐는가: 월세·대출·고정지출 자금까지 달러로 묶이지 않았는가 본전 환율을 계산했는가: 환전·결제 수수료와 세금까지 감안했는가 비중이 과하지 않은가: 자산의 일부인가, 대부분인가 사용 시점이 있는가: 여행·해외결제·유학 등 실사용 계획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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