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반년 전 종로에서 은 1㎏을 170만 원에 샀는데, 오늘 다시 물어보니 470만 원이라고 하더라.”
최근 은 투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다. 2025년을 ‘은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은값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지난해 12월 29일 기준 은값은 연초 대비 183% 상승했다(그래프 참조). 같은 기간 금값 상승률(71%)의 2배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주요 증시 상승률(S&P500 17%, 닛케이225 26%, 코스피 75%)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금과 은 모두 1979년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은 현물 가격은 지난해 12월 29일 장중 한때 트로이온스당 사상 처음으로 80달러(약 11만6000원)를 돌파했다. 이에 따라 은 시가총액은 4조400억 달러(약 5800조 원)에 달해 애플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금과 엔비디아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치가 높은 자산으로 올라선 것이다.
수요는 늘고 광산은 고갈
올해 원자재 시장의 강세 배경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통화량이 늘어나고 화폐가치가 하락해 금과 은 같은 실물자산 선호가 높아진다. 연준은 지난해 3차례 금리인하를 예고·단행함으로써 향후 실질금리 하락과 달러 약세 기대를 키웠고, 이는 금과 은 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여기에 중국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10여 년간 이어온 금 순매수 기조도 가격 상승을 뒷받침했다. 2024~2025년에는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목적의 금 매입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봉쇄 조치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안전자산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은은 올해 주요 원자재 중에서도 상승세가 두드러진 자산으로 꼽힌다. 산업 수요 급증과 구조적인 공급 부족이 동시에 나타난 영향이다. 은은 전기·열 전도성이 가장 뛰어나 전력·전자산업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전자기판, 센서, 태양광 셀 등 고정밀 부품에 필수 소재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은은 전체 수요의 50% 이상이 산업용”이라며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전기·열 전도체인 만큼 최근엔 태양광과 풍력 터빈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급 병목 현상도 은값 상승을 부추겼다. 전 세계 순수 은 광산은 대부분 이미 고갈돼 최근엔 구리·금·아연 등 다른 금속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은이 부산물 형태로 생산되는 경우가 많다. 월가의 유명 은 투자자이자 은 전문가인 피터 크라우스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누적된 은 공급 부족량은 약 8억 온스(약 2만2680t)로, 이는 전 세계 은 광산의 1년 치 생산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2021년 가격 급등과 달라”
국내 개인투자자도 은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은에만 집중투자할 수 있는 국내 유일 상장지수펀드(ETF)인 ‘KODEX 은선물(H)’는 연초 이후 146.2%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 수익률만 44%에 달해 전체 ETF 가운데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개인 순매수 규모는 2001억 원으로 집계됐으며, 연초 이후 누적 개인 순매수는 3221억 원에 육박했다. 실물 투자 수요도 급증했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 등 4대 은행에서 지난해 판매된 실버바 금액은 306억8000만 원으로, 2024년(7억9900만 원) 대비 약 38배 늘었다.
다만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은값은 단기 급락을 겪으며 변동성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29일(현지 시각)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은 선물 가격은 하루 만에 8.7% 하락해 온스당 72달러(약 10만4000원)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21년 2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전문가들은 급등 이후 차익 실현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진 결과로 본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스톤엑스그룹의 로나 오코넬 수석 애널리스트는 “은 가격은 이미 과매수 영역에 진입한 상태”라며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한 만큼 조정 위험이 커졌고, 이 같은 국면에서는 은이 금보다 상대적으로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태양광발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일부 제조업체가 은을 구리 등 더 저렴한 소재로 대체하고 있다”며 은값의 단기 하락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다음 날인 12월 30일 은값은 온스당 76달러(약 11만 원)로 소폭 반등했다.
증권가는 올해도 원자재 시장 전반에 강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옥지회 연구원은 최근 은값 흐름이 2021년 급등 국면과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상승 배경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는 “2021년에는 개인투자자 중심의 투기적 매수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확산이 가격 급등을 이끌었고, 이후 증거금 인상과 함께 투자 열기가 빠르게 식었다”며 “반면, 현재 은 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용 선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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