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契機)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를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에서 다음 달 1일까지 이어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오늘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경주는 APEC을 계기로 가장 한국적인 도시에서 세계인이 기억하는 도시로 나아가길 원한다. 한국은 APEC 정상회의에서의 성과에 더해, 이를 계기로 개최될 한미 정상회의에서 통상 현안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우리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문턱을 낮출 수 있길 기대한다.
세계는 미중 정상이 만나 갈등 완화의 실마리를 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APEC 회원들은 2024년 12월 비공식 고위관리회의를 시작으로 현재의 세계 무역질서가 보호주의의 골짜기를 벗어나, 새로운 협력의 문법하에 지속 가능한 국제질서를 찾아가는 전환점이 되도록 물밑에서 노력해 왔다.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와 이에 앞서 개최되는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AMM)는 이러한 열망을 단순한 기대를 넘어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실천의 초석으로 만들 것이다. APEC 회원들의 외교장관과 통상장관이 함께하는 AMM의 핵심 의제는 명확하다. 첫째, 역내 혁신과 번영,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이 창출하는 성장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둘째, 공급망 회복력과 적응력을 강화하고 무역을 원활하게 하는 데 AI와 같은 신기술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그리고 셋째, 급변하는 국제 통상 질서 속에서 APEC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한국은 AI 전환, 인구구조 변화 대응, 미래세대 육성, 문화 산업 등을 번영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제시하며, APEC AI 이니셔티브, 인구구조 변화 공동 대응 프레임워크, 미래세대를 위한 기금 마련, 문화 창의 산업 협력에 관한 정상 성명을 이끌고 있다. 또한 APEC의 논의를 실질적인 국내 산업 발전과 역내 포용적 성장으로 이어가기 위해, 국내적으로는 ‘제조업 AI 전환을 위한 연대(MAX 얼라이언스)’나 ‘아태지역 AI 센터(가칭)’ 설립, ‘세계경주포럼’ 개최 등 후속 조치를 수립하고 있다.
APEC의 진정한 강점은 구속력 있는 규범을 논의하는 대신 ‘아이디어 인큐베이터’로서 유연하고 자발적인 논의를 통해 공동의 도전에 대응할 해법을 모색하는 데 있다. 약화된 다자무역 체제의 한계를 넘어, AI 전환, 인구구조 변화, 기후변화 같은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국제 통상질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APEC에 주어진 역할이다.
경주에서 논의될 ‘우리가 만드는 지속 가능한 내일’이 분절된 세계를 다시 연결하고 함께 잘사는 번영의 길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금은 이 소중한 계기를 지속적인 협력의 흐름으로 이어갈 실천적 지혜를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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