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에 떠밀려나간 기업, 유턴은 극소수]
국내 유턴 기업 계속 줄어들어… 투자계획 변경됐다고 보조금 취소
법인세 감면 혜택도 실효성 없어… 정부 지원 선정돼도 43% 미복귀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다가 ‘유턴 기업’으로 선정돼 2023년 한국으로 돌아온 한 부품업체 대표 A 씨는 “다시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업체는 정착할 예정이던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지만 당초 예정됐던 공장 설비 계획이 틀어지면서 아예 지원을 받지 못했다. 민간 투자자 이탈로 일부 사업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자체 예산이 확정돼 당초 신청 사업을 이행하지 않으면 지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했다”며 “외부 환경에 따라 사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다음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뿐이니 보조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마련해 놓은 설비로 몇 년을 버틸 순 있겠지만 관세와 인건비 등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했다.
● “이미 산단 텅텅… 혼자 어떻게 돌아오나”
국내 복귀를 준비하는 기업 수는 매년 줄고 있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14년 27곳이 유턴 기업으로 선정됐지만 이후 2021년(26곳)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올해는 9월까지 11곳만 선정되면서 규모가 더 쪼그라들었다.
유턴 기업으로 선정된 200개 기업 가운데 87곳(43.5%)은 국내 투자 계획을 완료하지 못해 여전히 국내로 복귀하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했던 한 화학업체는 2020년 유턴 기업으로 선정된 후 정부로부터 2400만 원의 컨설팅 비용도 지원받았지만 ‘내부 투자 계획 변경’을 이유로 지금도 미복귀 상태다.
국내 제조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는 점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이유다. 2023년 중국에서 복귀를 시도하다가 포기한 부품업체 대표 B 씨는 “황폐해진 산업단지에 혼자 불 켜고 들어가 봐야 소용이 없다”며 “기업이 생산을 하려면 협력사 등 여러 업계가 함께 모여 생태계를 이뤄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니 복귀 메리트가 없었다”고 했다.
정부 지원의 실효성이 부족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 감면 혜택이다. 현행 기준 유턴 기업은 법인세를 7년간 100%, 이후 3년은 50%를 감면받을 수 있다. 하지만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4년간 유턴 기업이 받은 법인세 감면액은 약 81억 원에 불과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첨단 산업처럼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은 법인세를 감면해줘도 실제 감면 혜택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며 “국내 복귀 초기 비용을 절감해주는 등 복귀 혜택을 미리 앞당겨서 주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 해외 진출 기업 10곳 중 9곳 “유턴 계획 없다”
해외로 이전한 국내 기업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2년 8월 해외 진출 기업 306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3.5%가 국내로 돌아올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국내 사업 환경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근로시간, 임금 등에 대한 노동 규제를 꼽았고, 두 번째는 법인세 등 세제였다. 당시 윤석열 정부가 7월 첫 세제 개편안을 내놓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24%로 1%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발표한 때였다.
3년이 지난 지금 국내 기업 환경은 더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세제를 ‘정상화’하겠다며 법인세율을 다시 1%포인트 높이는 방안을 첫 세제 개편안에 담았다. 근로시간에 대한 논의는 주 52시간에서 더 나아가 주 4.5일제로 확대됐다. 산업재해 관련 규제가 대폭 강화되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2차에 걸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박양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미국 관세 등 대외적 불확실성과 함께 노란봉투법, 주 52시간 규제 등 한국의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유턴 기업 경쟁력 활성화를 위해 복귀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보조금을 파격적으로 증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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