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안전진단 풀자 두달간 재건축 5만채 ‘통과’… 최근 5년치의 5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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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곳 재건축 첫발 떼… 양천구 최다
年 입주량 웃돌아 도심 수급 숨통
수서1-삼풍 등 낙방 단지 재수 준비
“물꼬 텄지만 재초환 등 변수 많아”

‘재건축 대못’으로 꼽혔던 안전진단 규제가 올해 1월 완화된 뒤 서울 전역에서 재건축 아파트 5만3800여 채가 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연평균 입주 물량 4만5000채(2018∼2022년 평균)를 훌쩍 뛰어넘는 물량이 규제 완화 2개월 만에 공급의 첫발을 떼게 됐다. 서울 핵심 지역에서 주택 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는 물꼬를 트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목동·송파·노원서 잇달아 통과
동아일보가 9일 서울 25개 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안전진단 규제가 완화된 올해 1월 5일부터 2월 28일까지 총 32개 단지 5만3800여 채가 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기존 기준이 적용됐던 5년여간(2018년 3월∼지난해 11월 기준)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1만948채)의 5배에 이른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이번에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 규모는 약 10만 채에 달하는 분당신도시의 절반 규모”라며 “좋은 입지에 상당한 공급 기반을 확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대폭 강화됐다. 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1월 정부가 발표한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을 50%에서 30%로 낮추고, 주차장이 열악하거나 배관 시설이 낡은 단지도 쉽게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게 주거환경과 설비 노후도 점수 비중을 각각 30%로 높이는 방식으로 완화됐다.

이번에 안전진단이 통과된 아파트는 양천구(13개 단지·2만5493채)가 가장 많았고 송파구(5개 단지·1만1300채), 노원구(6개 단지·9711채)가 뒤를 이었다. 주로 30년 이상 노후 단지가 밀집된 지역이다.

● 과거 낙방했던 단지 ‘재도전’… 시장도 꿈틀
과거 안전진단에 도전했다가 낙방했던 단지도 ‘재수’를 준비하고 있어 안전진단 통과 단지는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강남구 일원동 수서1단지가 지난달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광진구 광장동 광장극동아파트는 2020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서초구 법조타운 인근 2390채 대단지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와 강동구 명일동 고덕주공5단지는 정밀안전진단 비용을 모금하고 있다.

송파구와 양천구 일대에서는 가격 오름세도 감지되고 있다. 올 초 안전진단을 통과한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 전용면적 84㎡는 올해 1월 14억1000만 원에서 2월 16억3000만 원으로 2억 원 넘게 오른 가격에 팔렸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전용 118㎡ 집주인이 17억5000만 원에 집을 내놓고 계약까지 갈 뻔했다가 안전진단 통과로 매수자가 많아지자 3000만 원을 올려 팔았다”고 했다. 양천구 목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양천구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어서 실거주자만 매수할 수 있는데도 규제가 풀리면 전세를 끼고 매수하겠다며 직접 방문한 손님이 여럿 있었다”고 전했다.

● 공급 물꼬 트였지만 고금리와 공사비 등 변수

이 단지들은 부동산 시장 침체 시기를 재건축 추진 적기로 보고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재건축 단지 전체의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된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14개 단지 일대는 다음 단계인 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동의서를 받거나 용역비를 모금하며 분주한 모습이다. 지구단위계획은 일종의 마스터플랜으로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 배치와 용적률 등을 규정하는 개발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일부 단지에서는 ‘동의서 제출이 늦어지면 입주는 더 늦어진다’는 등의 플래카드까지 붙이고 동의서 제출을 독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진단 규제 완화로 서울 도심 핵심지에 부족하던 주택 공급의 물꼬가 트였지만 금리 인상과 공사비 상승,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변수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리가 높으면 사업비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진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공사비도 계속해서 오르는 추세다. 그만큼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단지는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1월 안전진단을 통과한 양천구 신월동 신월시영은 소유주 투표 결과 약 90%가 신탁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지 소유주는 “조합이 자체 추진하면 둔촌주공 재건축처럼 시공사와의 갈등이나 조합 비리 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고 전했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안전진단 통과 이후 이주까지 5년으로 설정해 사업을 추진하지만 실제로는 10년까지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걸림돌이 없어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주택 공급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고 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안전진단#재건축#양천구#목동#송파#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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