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 와인바’ ‘반마리 고등어’… MZ직원 나서니 MZ소비자 ‘엄지 척’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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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컨슈머가 온다]〈2〉 뉴컨슈머 마음 읽는 MZ 직원들
‘힙의 성지’ 동묘 와인바 대성공…1인 가구용 ‘반마리’ 시리즈 인기
아이디어 차원 넘어 ‘전권’ 행사…소비 히트상품 줄줄이 탄생시켜
“MZ소비자들, SNS 등 파급력 커…윗세대도 따라하며 전체시장 영향”

올 초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회의실. 롯데가 직접 수입해 국내에서 단독으로 파는 와인 ‘LAN멘시온’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를 두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입사 4년 차 광고마케팅팀 사원 강산 씨(31)는 또래 사이에서 ‘힙의 성지’로 통하는 서울 종로구 동묘를 떠올렸다. “동묘에서 한 달간 와인바를 열면 어떨까요? 마트 제품이란 홍보나 간판 없이요.”

참석자들은 생소했다. 평소 같으면 마트 판매대 사이에서 시음회를 열었을 판촉 행사를 마트 밖에서, 그것도 롯데마트라는 이름을 떼고 연다니…. 하지만 회사는 강 씨의 파격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공간 섭외부터 운영, 홍보까지 ‘알아서’ 하도록 전권을 줬다.

그렇게 해서 동묘 인근 오래된 주택가의 한옥을 개조한 와인바가 팝업스토어 형태로 탄생했다. 손님들은 여기서 와인을 즐기다 기분 좋게 와인바를 떠날 때에야 롯데마트 와인 쿠폰을 받았다. 마트 방문을 자연스레 유도한 것. 이곳은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고 한 달간 2000여 명이 방문했고, 동묘에서 와인 맛을 본 20, 30대 젊은 손님들이 마트에 직접 와서 와인을 사가기 시작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비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 의사결정에서 MZ 직원들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국내 주요 소비재·유통기업 44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MZ 소비자를 잡기 위해 “MZ 직원에게 주도권을 부여한다”는 기업이 72.7%(32곳)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기업 의사결정에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MZ 캐비닛’으로 소비시장의 히트 상품을 줄줄이 탄생시키고 있다.

○ 히트상품 내는 신입사원, 80년대생 임원
올해 1월 입사한 홈플러스 수산팀 막내 바이어 최하림 주임(27)은 자취생이다. 그는 자취 경험을 살려 1인 가구에 특화된 고등어 반 마리, 삼치 반 마리 등 ‘반 마리’ 시리즈의 탄생을 도맡았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고등어, 가시가 발라진 순살 생선 등 자취 초보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생선들이다. 기업들은 단순히 MZ 직원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참고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들에게 전권을 주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 바이어 평균 나이는 35.4세. 2018년 대비 3.6세 낮아졌다. 20, 30대 1인 가구를 겨냥해 리빙과 식품 분야에 MZ세대 바이어를 집중 배치했는데, 바이어의 나이가 낮은 분야일수록 매출 상승률이 높았다. 평균 5.9세 어려진 리빙 부문 매출은 70%, 7세나 낮아진 생활용품 부문 매출은 110% 상승하는 등 두 배 안팎으로 올랐다. ‘MZ 직원이 나서면 MZ 소비자가 반응한다’는 공식이 확인된 셈이다.

1980년대생 젊은 임원을 전면에 배치하는 기업도 늘었다. CJ그룹이 지난해 신설한 전략혁신부서(SID) 임직원 15명의 평균 연령은 30세다. 조직 책임자도 지주사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한 이보배 경영리더(83년생)가 맡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선 정가윤 설화수 마케팅디비전장(상무·84년생), 신세계그룹에선 김혜경 전략실 온라인TF팀장(상무·81년생)이 최연소 임원이 됐다.

○ 소비패권 이동에 입김 세지는 ‘MZ 캐비닛’
MZ세대 발탁에는 변화에 뒤처지면 생존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특히 신사업 발굴의 경우 팀 전체를 MZ세대로만 꾸리기도 한다. 미술품 재테크, 전시회 등 새 콘텐츠 발굴을 위해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말 신설한 컬처사업팀은 전원 MZ세대로 이뤄졌다. 올해 4월 ‘인증샷 성지’로 떠오르며 325만여 명을 끌어 모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 초대형 벨리곰 조형물도 MZ세대 직원의 기획이었다.

MZ 소비자 공략이 중요해지는 건 소비시장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진 덕분이다. 본보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은 MZ세대의 소비 기준이 단순히 가격이나 가성비를 넘어 재미·흥미, 트렌드, 환경, 젠더 같은 ‘미닝아웃(Meaning out)’에 있다고 봤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소비를 통해 본인 라이프스타일을 개선하고 소셜미디어 등에 올려 동참을 유도한다”며 “발화 공간이 온라인인 만큼 연령이나 지역적 한계를 넘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실제로 파격적인 공간 구성으로 20, 30대 젊은 소비자들이 대거 유입된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매출의 54.3%가 10km 이상 떨어진 지역의 소비자들에게서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MZ세대가 좋아하는 것을 윗세대도 따라 하고 함께 즐기는 패턴이 있다”며 “MZ세대를 잡으면 연령을 막론하고 소비시장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 MZ세대의 마음을 읽기 위해 또래인 MZ 직원을 활용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했다.

“MZ직원끼리 맘껏 일하세요” 2030만의 팀 꾸리기도

상품개발부터 영업까지 전진배치
“‘평생 직장’ 개념 희박한 MZ세대, 자기효능감 느껴야 소속감 생겨”


기업들이 MZ 직원을 전진 배치하는 건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희박한 20, 30대 젊은 직원들을 붙잡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강요하는 것보다 일하면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느끼게 해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CJ제일제당은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MZ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있다. 사내벤처팀은 대표이사 직속 조직으로 팀원들은 전략기획, 마케팅, 영업, 생산, 디자인 등 각 직무에서 최고책임자 역할을 맡는다. 음식 업사이클링(식품 부산물 재가공) 브랜드 ‘익사이클’, 식물성 대체우유 브랜드 ‘얼티브’가 여기서 탄생했다.

편의점 GS25는 2030세대 직원들로만 구성된 신상품 개발 프로젝트이자 PB 브랜드 ‘갓생기획’을 운영 중이다. 상품, 캐릭터, 브랜드를 자유롭게 조합해 ‘세상에 없던’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노티드우유, 틈새오모리김치찌개라면, 팝잇진주캔디 등 100개 넘는 히트 상품이 탄생해 누적 1400만 개 이상 팔렸다. 이마트24도 MZ 직원들로 구성된 ‘딜리셔스 탐험대’(딜탐)를 꾸렸다. 이들은 브레인스토밍, 시장 조사, 상품 출시 등 전 과정에 참여한다. 이마트24 관계자는 “MZ세대의 욕구(needs)를 구체화해서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1월 롯데마트에 입사한 광고마케팅팀 이의섭 씨(26)는 최상급 한우 브랜드 ‘마블나인’을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 팝업스토어에서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서울 시내 유명 한우 오마카세 업장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제안서를 전달했다. 기존 업무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일할 때도 많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걸 현실로 만드는 작업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식품업계 최초로 유튜브 구독자 10만 명을 넘어 실버버튼을 받은 빙그레 아이스크림 마케팅 담당 팀(냉동BM1팀)은 팀장을 제외한 팀원 6명 전원이 MZ세대다. 팀 관계자는 “경영진이 MZ세대를 통제하고 길들이기보다는 ‘여러분끼리 마음껏 일해 보라’며 전폭적으로 지지해 회사와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늘고 성과도 난다”고 말했다.

온라인 교육기업 휴넷이 최근 입사 3년 차 이하 신입사원 56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이들이 예상하는 근속 기간은 평균 2.8년. 현재 회사에서 5년 이상 근속할 것이라는 답변은 15.3%뿐이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내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MZ 직원을 잡아두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노동시장 유연화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면 전폭적인 권한과 책임을 쥐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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