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덕에 억대 연봉 안부러워” 전업주부 양잠 도전기[은퇴 레시피]

  • 동아일보

[은퇴 걱정 직장인 필독 레시피] 50대 가정주부에서 60대 양잠 농부로
남편 사업 기울던 쉰셋에 나선 도전… 식용곤충 건강식품 바람에 올라타
살충제 기운에 떼죽음 고난의 2년… 식당 서빙하며 버텨 연매출 1억원
누에 먹고 나아진 몸 “제일 잘한 일”… 귀농은 “40대 적기-판로 확보 먼저”

광주광역시 시내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들어가는 전남 함평 깊은 산골. 이른 아침부터 산골누에공장의 잠실(蠶室·누에 치는 방)이 요란하다. 이슬 맺힌 신선한 뽕잎을 누에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소리다. 오늘은 농장에서 기르는 누에 중 ‘5령 3일 누에(허물을 네 번 벗고 사흘 지난 누에)’ 약 22만 마리를 누에 베드(채반)에서 걷어 내 냉동건조하는 날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최영숙 씨(64)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5령 3일 누에를 수확하고 아직 덜 자란 누에에는 뽕잎을 먹이느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쉴 틈이 별로 없다.

“농사일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죠. 하하.”

웃으며 던지는 농담 속에 뼈가 있지만, 그는 누에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고 그 덕분에 지금도 누에를 치고 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아들과 함께 생활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도 결국 누에다.

● 용기만으로 뛰어든 양잠

누에치기 11년 차 최영숙 씨가 전남 함평 ‘산골누에농장’ 잠실(蠶室·누에 치는 방)의 누에 베드 앞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일은 고되지만 “누에 덕에 아팠던 것을 잊고 산다”는 그의 얼굴에 활력이 묻어난다. 함평=채널A 임예은·배솔찬 CD rivergrass@ichannela.com
누에치기 11년 차 최영숙 씨가 전남 함평 ‘산골누에농장’ 잠실(蠶室·누에 치는 방)의 누에 베드 앞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일은 고되지만 “누에 덕에 아팠던 것을 잊고 산다”는 그의 얼굴에 활력이 묻어난다. 함평=채널A 임예은·배솔찬 CD rivergrass@ichannela.com
최 씨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결혼해 아들딸을 키웠다. 남편이 운영하던 전기 관련 사업이 점점 어려워지자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것저것 해 봐도 답이 없으니까 시골에 한번 가 볼까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TV에서 누에 농장이 나오는 거예요.”

시골에서 누에를 키우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일면식 없는 누에 농장주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사업성을 물었더니 “하기 나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도전을 해 보기로 결심한 최 씨 부부는 누에 키우기에 적합한 청정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함평군 원산리에 작은 땅을 마련하고 집과 양잠시설을 갖춰 누에 치는 농부가 됐다. 최 씨 나이 쉰셋이었다.

부부가 누에농장을 시작한 2016년 무렵은 정부의 제2차 곤충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이 출범하면서 식용곤충 분야의 성장 가능성에 관심이 커지던 때였다. 오랫동안 비단실 원료로만 쓰이던 누에가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주목받기 시작하며 ‘기능성 양잠 산업’이 움트고 있었다. 실을 뽑는 기관(器官)이 발달하기 직전의 5령 3일 누에는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데옥시노지리마이신(DNJ) 성분이 풍부해 혈당 관리용 건강기능식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7년에는 홍잠(弘蠶)이라는 새로운 원료도 등장했다. 홍잠은 고치를 짓기 직전 몸속에 견사단백질이 가득 찬 누에(숙잠)를 쪄서 동결건조한 것으로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기능성 식품 원료다. 단백질은 물론 아미노산,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등을 고루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진청은 차의과학대학과 공동으로 홍잠이 간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2017년 11월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치밀한 계획보다는 용기 하나로 뛰어든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전통 양잠업이 건강식품 산업으로 탈바꿈하던 바로 그 시점에 발을 들인 셈이 됐다.

● 2년의 실패… ‘투잡’ 뛰며 고비 넘겨

최영숙 씨가 누에들에게 신선한 뽕잎을 주고 있다.
함평=채널A 임예은·배솔찬 CD rivergrass@ichannela.com
최영숙 씨가 누에들에게 신선한 뽕잎을 주고 있다. 함평=채널A 임예은·배솔찬 CD rivergrass@ichannela.com
최 씨의 양잠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순탄하지 않았다. 누에를 처음 치다 보니 시행착오가 잦았다. 누에는 워낙 예민한 생물이라 정성껏 돌봐도 하나의 외부 환경 변화에 허망하게 떼죽음당했다.

어느 해에는 농장 뒤편 땅을 새로 산 사람이 대추나무를 심으며 살충제를 뿌렸는데 그 농약 기운이 잠실까지 스며들었다.

“잘 자라던 누에가 너무 오래 잠을 자길래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자는 게 아니라 죽은 것이었어요.”

그때의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최 씨 눈빛이 한순간 깊어졌다.

그해 봄에 누에 알을 세 차례 부화시켰지만 모두 실패했고 가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봄에는 뒤편 밭에서 살충제를 뿌리지 않았고, 잠실 창문도 꼭꼭 닫아 혹시 모를 외부로부터의 오염에 철저히 대비했지만 어렵사리 부화한 누에들은 애쓴 보람도 없이 서서히 스러져갔다. “약해(藥害)를 입으면 영향이 2년은 간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고심 끝에 부부는 누에 베드 전체를 폐기하고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제야 누에가 예전처럼 기운차게 자라기 시작했다.

누에가 더 이상 폐사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2년간 실패와 재투자로 입은 타격은 컸다. 땅을 사고 시설을 짓는 데 이미 1억5000만 원을 쏟아부은 직후라 더욱 뼈아팠다. 최 씨는 이 시기에 인근 장어구이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고비를 묵묵히 버텨 냈다.

● 매출 1억 원… 많진 않지만 부족함 없어

이제 누에치기 11년 차, 농장은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정성껏 키운 누에는 분말이나 환(丸)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5령 3일 누에 환은 500g에 10만 원, 홍잠 분말은 300g에 25만 원이다. 한번에 먹기 편하도록 스틱 형태로 소분 포장한 제품도 있다. 분말 및 환 가공과 스틱 포장은 함평 가공센터와 전북 순창에 있는 곤충 전문 가공 영농조합에서 한다.

연간 매출은 약 1억 원 수준이다. 시설을 풀가동하면 3억 원까지도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건강기능식품 특성상 경기 변동에 민감해 아쉬움이 남는 상황이다. 비료와 농약 값에 고장이 잦은 기계 수리비, 시설 재투자 비용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은 많지 않다. 그래도 최 씨와 아들이 생활하기에는 넉넉하다.

“시골에서 살다 보면 큰돈 쓸 일도 없고 집과 시설도 갖춰져 있으니 둘이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어요. 노후를 화려하게 보내지는 못하지만 돈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일 없고 늙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물론 고된 노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루 세 번 뽕잎을 따다 누에들에 먹이고 시설을 돌보는 일과로 최 씨 하루는 빈틈없이 채워진다. “도시에서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시골에서는 일 끝나는 시간이 따로 없다”고 그는 말한다. 누에는 사나흘 뽕잎을 먹다가 허물을 벗기 전에 먹이를 끊고 잠에 드는데 개체마다 잠드는 시간이 달라 키우는 사람은 하루도 제대로 쉬기 어렵다.

● 고된 노동 버티는 힘도 누에에서

그럼에도 최 씨가 가장 뿌듯하게 꺼내는 이야기 역시 누에에 관한 것이다. 원래 그는 건강 체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집도 작고 입맛도 없어 잘 먹지 않았고 움직이기 싫어 누워 책만 보던 사람이었다.

시골에서 일을 시작하자 몸이 곧바로 한계를 드러냈다. 무릎 관절이 망가져 6개월마다 주사를 맞았다. 염증 주사에 연골 재생 주사까지 맞으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였다. 계단을 오를 때면 난간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다. 그런데 누에를 직접 챙겨 먹기 시작하면서 몸이 달라졌다.

“지금은 젊은이처럼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내리고 병원도 더 이상 다니지 않아요. 그동안 그렇게 아팠던 게 어느 순간부터 기억도 안 나요. 태어나서 뭘 제일 잘했나 생각해 봤는데 누에 키운 건 너무 힘들어서 잘했다고 못 하겠고, 누에 먹은 게 진짜 제일 잘한 일이에요.”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최 씨는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지 않는다.

“사람들이 ‘뭐 하다 안 되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하는데,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시골에 오면 일이 도시보다 훨씬 많고 한 사람이 열 사람 몫을 해내야 농장이 돌아갑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시장 조사다.

“뭘 하면 잘 팔리는지 먼저 알아본 다음 판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와야 해요. 좋은 걸 만들어도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거든요.”

나이에 대한 조언도 현실적이다. 터를 잡고 일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귀농을 생각한다면 40대가 적기라고 덧붙였다.

“고생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큰돈 벌기도 힘들어요. 그래도 맑은 공기 마시며 살고 싶다면 괜찮은 선택이에요. 건강을 얻을 수도 있다면 금상첨화지요.”

5령 3일 누에 수확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며 총총히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누에#양잠#식용곤충#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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