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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칸막이 사라진 금융, ‘디지털 협쟁’의 시대

입력 2021-05-20 03:00업데이트 2021-05-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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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빅뱅 ‘협쟁의 시대’로]
빅테크-핀테크 기업 영역 확장… 전통 금융사들 인터넷은행 도전
카드사들, 간편결제 앱 연대… 은행-증권사는 포털과 손잡아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카카오가 투자한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최근 장외주식 시장에서 몸값이 40조 원 가까이 치솟았다. 시장점유율 1%대에 불과한 신생 은행이 1, 2위 금융그룹인 KB금융(약 24조 원), 신한금융(약 21조 원) 시가총액의 갑절에 육박하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금융시장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디지털 빅뱅’의 변곡점에 있다는 뜻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전통 금융사와 신흥 경쟁자인 빅테크, 핀테크(금융 기술기업)들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는 ‘협쟁(Co-opetition·협력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영역 간 경계가 없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를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은 올해 경영전략으로 빅테크, 핀테크와 협력을 모색하는 동시에 경쟁하겠다고 일제히 선언했다. 지난달엔 금융당국이 신규 허가만 내준다면 카카오뱅크 같은 독자 인터넷은행 설립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통 금융사들은 신생 도전자에 맞서기 위해 과거의 경쟁자와도 과감히 손을 잡고 있다. 간편결제 시장에서 빅테크와 핀테크가 선보인 ‘페이’ 서비스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카드사들은 각 사의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에서 타사 카드도 등록해 결제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았다. 동시에 빅테크와의 제휴를 통해 새로운 금융상품을 내놓거나 핀테크와 손잡고 자산관리 서비스 개발에 나서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은행, 미래에셋증권 등이 네이버와 손잡고 선보이는 대출상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이 대표적이다.

음식 주문·배달, 부동산·자동차 구매 등 비(非)금융 영역으로 사업을 넓히며 역공에 나서는 금융사들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느려터진 은행’이란 손가락질을 받던 동남아 최대 은행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요즘 ‘세계 최고 디지털은행’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야 전문 인력을 대거 영입한 데다 업종이 다른 400개 이상의 기업과 손잡고 생활밀착형 플랫폼을 선보인 덕분이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국내 금융사들이 DBS 모델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는 것은 금융사나 빅테크, 핀테크 모두 마찬가지”라며 “협쟁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쟁(Co-opetition)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제로섬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들과 때로는 협력하거나 경쟁하면서 동반성장하고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영전략.


적과의 동맹… KB페이서 현대카드 쓰고, 우리銀-네이버 대출 제휴
<1> 협력과 경쟁의 최전선 ‘금융 플랫폼’
《중국인 3억7300만 명이 이용하는 ‘핑안 굿닥터’는 세계 최대 온라인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꼽힌다. 이 플랫폼에선 밤에도 화상으로 실시간 원격 진료를 받고 온라인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다. 30분 이내에 ‘총알’ 약 배송도 된다. 병원 3700곳과 약국 15만1000곳이 참여한 이 플랫폼은 중국 최대 민영 보험사인 핑안보험그룹이 2015년 선보인 것이다. 헬스케어 서비스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보험 등에 눈 돌리면서 핑안굿닥터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핑안보험 고객이 됐다. 핑안보험은 이제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지털 금융 협쟁(협력과 경쟁)’의 최전선은 플랫폼이다. 금융업계 안팎에선 “플랫폼을 가진 자가 금융업을 독식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출범 3년여 만에 고객 1600만 명을 끌어들인 건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기반이 됐다. 핀테크 스타트업이던 토스가 5년 만에 증권, 보험판매, 인터넷은행 등을 둔 ‘디지털 지주사’로 거듭난 것도 1800만 명 회원을 둔 플랫폼의 힘이다.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와 핀테크(금융 기술기업)의 진격에 맞서 금융회사들도 일제히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 ‘공동의 적’에 맞서 뭉치는 금융사들
“우리끼리 경쟁하다가 다같이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 거죠. 공동의 적이 나타났으니까요.” 국내 8개 카드사들은 이달 초 모바일협의체 회의를 갖고 각 사의 간편결제 플랫폼을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각 카드사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앱)에 타사의 신용·체크카드를 등록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KB페이’ 앱에 현대카드를, ‘신한페이’ 앱에 삼성카드를 등록해 결제하는 식이다.

경쟁사인 카드사들끼리 손잡은 것은 빅테크 공습이 가장 치열한 분야가 지급결제 시장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시장이 커지면서 지난해 하루 평균 간편결제 이용 금액이 4492억 원으로 4년 새 7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이 중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같은 전자금융 사업자들의 점유율이 45.7%(2052억 원)로 은행, 카드 등 금융사(30.5%)를 한참 추월했다. 빅테크들은 2019년 처음으로 금융사 점유율을 앞지른 데 이어 빠르게 간편결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주요 금융그룹은 각 계열사 서비스를 한데 묶은 통합 플랫폼을 만들어 금융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빅테크 등에 맞서고 있다. 일례로 KB금융은 ‘KB페이’에 KB국민은행, KB손해보험, KB증권 등 전체 금융 계열사 서비스를 통합해 종합 생활금융 플랫폼을 구축할 방침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빅테크는 막강한 플랫폼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검색 쇼핑 메신저를 이용하던 기존 고객을 그대로 금융 서비스로 끌어들일 수 있다”며 “플랫폼은 고객들을 묶어 놓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해 각종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발판”이라고 했다.

○ “금융 빅뱅 5년 내 이뤄질 것”
적이었던 빅테크가 동업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은행은 네이버와 손잡고 올 하반기(7∼12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사업자 대상의 신용대출 상품을 선보일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행 신용평가 시스템에 네이버 매출액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신용도를 평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한은행은 ‘네이버부동산’ 안에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연계할 방침이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손잡고 소상공인 대출을 선보인 미래에셋캐피탈은 개인 신용대출 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새로운 플랫폼이나 상품 개발 등을 위해 핀테크와 손잡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토스증권 카카오증권 등의 진입으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경쟁이 치열한 증권업계에서는 KB증권이 검색 포털을 운영하는 줌인터넷과 손잡고 새로운 MTS ‘바닐라’를 공개한다. 줌인터넷의 기술력과 KB증권의 노하우를 결합해 미국의 ‘로빈후드’ 같은 주식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다.

최근 금융지주들은 금융당국에 인터넷전문은행 독자 설립에 관심 있다는 뜻을 공식 전달했다. 대한항공이 저비용항공사(LCC)에 맞서 진에어를 설립한 것처럼 금융그룹도 인터넷은행에 맞서는 독자적인 디지털뱅크를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빠르고 쉽고 간단한 것을 찾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또 다른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플랫폼은 금융 소비자와 기업이 직접 만나는 ‘손안의 시장’이 됐다”며 “금융권의 빅뱅과 몰락, 전환은 5년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은행이 배달앱 만들고 게임 접목 ‘MZ 구애’
빅테크 공습에 ‘생활 플랫폼’ 확장

국내외 금융회사들이 금융업 밖으로 눈을 돌려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음식 배달, 숙소 예약, 자동차 매매 같은 비(非)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생활 플랫폼’을 만들어 고객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빅테크 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가 플랫폼 사업자의 상품 공급자로 전락하기 전에 다양한 생활 플랫폼과 제휴해 ‘생활금융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전통 금융사들이 만든 다양한 생활밀착형 플랫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선보인 ‘DBS 마켓플레이스’가 대표적이다. DBS가 400개가 넘는 제휴회사와 손잡고 만든 이 플랫폼에서는 자동차 구매, 항공·호텔 예약, 부동산 매물 검색 등을 할 수 있다. DBS는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여행자보험, 마일리지카드 등 금융상품 판매를 15% 이상 늘렸다.

인도 최대 은행인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는 디지털뱅킹과 생활 플랫폼이 결합된 ‘요노(YONO)’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상품뿐 아니라 패션, 여행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SBI는 요노를 통해 전통 은행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고객군을 넓혔다.

국내 금융사들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신한은행은 올해 말 배달의민족, 요기요 같은 배달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 플랫폼 개발에 책정한 비용만 140억 원에 이른다.

신한은행은 식당에서 떼는 수수료를 낮추고 정산은 더 빨리 해줘 기존 배달 플랫폼과 차별화할 계획이다. 또 배달 플랫폼으로 확보한 매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상공인 대상의 금융상품도 내놓을 예정이다. 신한은행 고위 관계자는 “비금융 영역에서 접점을 확대해 고객들의 라이프사이클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고객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끌어오기 위해 대형 게임회사들과 손을 잡는 금융사도 늘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게임업계 2위인 넷마블과 제휴해 게임을 활용한 자산관리 서비스 개발에 나섰다. 앞서 신한은행도 게임과 금융을 연계한 콘텐츠 개발, 결제사업 추진 등을 위해 넥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게임은 MZ세대에 친숙할 뿐만 아니라 충성도도 높기 때문에 금융회사로서는 젊은 고객층을 미리 선점하고 이들을 은행 플랫폼으로 데려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신지환 jhshin93@donga.com·김자현·박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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