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편한 ‘창고형 약국’ 1년 만에 40여곳… “약물 오남용 우려도”

  • 동아일보

지난해 6월 첫 개설 후 전국 확산… ‘다양한 상품-낮은 가격’ 강점
불필요한 대량 구매, 복약지도 ‘부실’
동네약국 폐업 “접근성 악화” 우려
“편익과 안전 지킬 적절한 규제 필요”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 내부. 메가팩토리 제공.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 내부. 메가팩토리 제공.
19일 서울 금천구의 한 대형마트. 올 2월 문을 연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에서 손님들이 약과 영양제 박스를 쇼핑 카트에 가득 담고 있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임은지 씨(36)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돼 처음 방문했다”며 “아기 모기약과 연고를 사러 왔는데, 다양한 상품을 비교할 수 있고 값도 싼 것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지난해 6월 경기 성남시에 첫 매장이 들어선 지 약 1년 만에 창고형 약국은 전국 40여 곳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대형마트처럼 넓은 매장에서 일반 의약품,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의약외품 등을 대량 구입할 수 있다. 작게는 약 500m²에서 큰 곳은 5000m² 이상까지 매장마다 규모도 다양하다.

소비자들은 일반 약국보다 낮은 가격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불필요한 의약품 대량 구매와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편익을 무시할 순 없지만, 복약 지도 강화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약값 저렴, 품목도 다양… 소비자는 ‘만족’

소비자들은 창고형 약국의 낮은 가격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일반 약국보다 품목별로 가격대가 10∼30% 낮게 형성돼 있다. 금천구에 사는 황모 씨(39)는 “감기약, 진통제, 영양제까지 한 번에 저렴하게 살 수 있어 자주 들른다”며 “동네 약국은 특정 제약사 제품만 들여놓은 경우가 많은데 창고형 약국은 품목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운영사 측은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강조한다. 창고형 약국은 처방전이 있어야 하는 전문 의약품을 제외한 일반 의약품과 건기식, 영양제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한다. 정두선 메가팩토리 대표는 “약사와 상담한 후 제한된 의약품을 구입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직접 상품을 비교해 보고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고, 약값 부담을 낮추는 것이 창고형 약국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자료: 대한약사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 대한약사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부는 창고형 약국이 효과와 부작용 우려가 동시에 있다고 평가했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창고형 약국이 의약품 오남용 우려는 있지만, 품목 다양성과 소비자 접근성 등 측면에서 소비자 편익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약국에서 근무하는 이진수 약사는 “의약품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 욕구를 막을 순 없다”면서도 “영양제 정도는 과다 복용해도 큰 탈이 없지만, 일반 의약품은 정확한 용법과 용량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복약 지도 부족… ‘약품 오남용’ 우려


현장에선 의약품 ‘박리다매’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노수진 대한약사회 홍보이사는 “당장은 약을 싸게 사서 좋겠지만, 정확한 복약 지도 없이 약물을 오남용할 경우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창고형 약국에선 잇몸이 약해져 임플란트 시술을 앞둔 한 고객이 약사에게 잇몸약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약사는 잇몸약보다 건기식에 특정 성분이 더 많다며 건기식 구매를 권했다. 이윤표 대한약사회 홍보이사는 “약보다 건기식이 이윤이 많기 때문에 복약 지도 대신 건기식 판매에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며 “건기식과 일반 의약품을 한 공간에서 구분 없이 판매하는 것은 약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의약품을 단순한 상품처럼 인식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매장에선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슈도에페드린 성분의 해열진통제와 감기약을 ‘1+1’ 판촉 행사를 통해 대량으로 구입하는 소비자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슈도에페드린 성분은 과다 복용 시 심혈관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일반 약국에선 환자가 발생했을 때 복약 지도를 받아 소량으로 구입하지만, 창고형 매장에선 이런 성분도 아무 설명 없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 동네 약국 “생존 우려”… 규제 강화 움직임


약사들은 무분별하게 퍼지는 창고형 약국이 ‘동네 약국’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올 4월 대한약사회가 창고형 약국 개설 지역 인근 약국 535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31.8%는 창고형 약국 개설 뒤 매출이 10∼19% 줄었다고 답했다. 매출이 20∼29% 감소한 약국도 16%였다.

동네 약국들은 단골 환자를 지키기 위해 환자 개인별 맞춤형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만성질환 유부, 복약 이력 등을 잘 알고 있는 동네 약국의 강점을 살려 환자 상담을 강화한 것이다. 서울 강서구 창고형 약국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살아남으려면 환자에게 맞는 복약 지도와 건강 상담에 더 집중하면서 신뢰를 쌓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창고형 약국 확산이 지역 보건 인프라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익이 줄어든 동네 영세 약국들의 폐업을 초래해 취약 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홍보이사는 “동네 약국은 고령층 건강 관리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는데, 창고형 약국이 확산되면 이런 기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도 창고형 약국 확산이 업계와 국민 건강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국회에선 약사나 한약사 1인이 둘 이상의 약국을 개설하거나 운영하지 못하도록 한 이른바 ‘네트워크 약국 방지법’이 지난달 통과됐다. 이와 함께 ‘창고’ ‘팩토리’ 등 의약품을 일반 상품처럼 인식하게 하는 명칭을 상호에 쓸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정 실장은 “약국은 법적으로 약사 개인이 개설하게 돼 있지만, 대형 창고형 약국은 외부 자본 개입 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약국 명칭과 광고 규제 등 제도 보완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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