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포세’ 이어 ‘주포원’… 미로같은 규제에 은행 패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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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쏟아진 대책에 헷갈리는 대출창구

40대 직장인 강모 씨는 2019년 12·16부동산대책이 나오기 전 전세를 끼고 15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매입했다. 세입자가 나가면 ‘내 집’에 들어가려던 강 씨는 은행을 찾았다가 충격을 받았다. 분명히 12·16대책 이후 매입한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막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은행원의 답변은 달랐다. “15억 원 초과 아파트는 주담대가 안 나온다. 생활안정자금 대출과 신용대출만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강 씨는 보도자료를 뒤져보고 문의전화를 돌렸다. 재차 항의한 끝에 강 씨는 지점장으로부터 “미안하다. 전세금을 내주기 위한 대출은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보름 동안 마음고생을 한 뒤였다.

2018년 9·13대책부터 2019년 12·16대책, 올해 6·17, 7·10대책 등 굵직한 부동산 대책이 이어지면서 대출 규제도 추가, 또 추가되며 한없이 난해해졌다. 그렇다 보니 대출 최전선인 은행 지점에서마저 대출 가능 여부 등을 놓고 수요자와 갈등을 겪는 사례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양포세(양도소득세 상담 포기한 세무사)에 이어 주포원(주택담보대출 상담 포기한 은행원)이 등장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 은행원들도 미로 같은 대출 규제에 ‘헷갈려’

현장의 은행원들도 할 말이 많다. 12·16대책에서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담대가 막히고, 6·17대책에서는 ‘갭 투자’를 잡기 위해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회수 규정이 더 강화됐다. 여기에 각종 경과 규정, 예외 규정이 더해지면서 대출 ‘난이도’는 더 상승했다. A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책이 나올 때마다 전산 시스템을 변경하고 수십, 수백 페이지의 가이드라인을 숙지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이라며 “솔직히 대출 담당자도 세세한 규정을 완벽하게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온라인에서는 연일 대출 규정과 관련한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 최근에는 금리가 하락하면서 ‘대출 갈아타기’와 관련한 문의가 단골 메뉴다. “주담대를 이미 이용 중이었는데 그 사이에 살고 있는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여버렸다면 대출을 갈아탈 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것이다. 은행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출을 갈아타면 LTV는 새 기준이 적용돼 대출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

‘6개월 전입 의무’와 관련해서도 “규제지역에서 주담대를 받으면 6개월 내 무조건 새집에 전입하라고 하는데 예외 규정은 없는지, 전입해서 과연 얼마나 거주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적지 않다. 은행들은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예외는 없다”면서도 전입 후 거주 기간에 대해서는 “딱히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 같다”라는 반응이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이 여전한 것이다.

○ 은행 상대 민원도 25% 이상 증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1분기(1∼3월) 은행에 대한 금융 민원은 전년 동기에 비해 25% 이상 늘었다. 대출 수요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빡빡해진 대출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임대차 3법도 은행과 대출 수요자 간 갈등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이 생기자, 일부 집주인들이 은행의 전세대출 관련 연락을 피하는 식으로 애를 먹인 것. 정부가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방침을 강조했지만 대출 리스크를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은행은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최근 보증기관들이 ‘전세대출 연장 관련 연락을 집주인이 회피하더라도 대출이 가능하다’고 못을 박으며 은행들은 한시름 덜었다.

갈등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B시중은행 관계자는 “14일부터 ‘기존 주택 처분 및 전입요건’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대출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까 무섭다”고 했다.

장윤정 기자 yunjng@donga.com
#은행#패닉#부동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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