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기업 일자리 줄고 영세업체 취업 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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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성 A 씨는 13년 동안 대기업 건설사를 다녔다. 하지만 회사의 재정 상태가 최근 나빠지면서 회사에서 지난달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에 이어 건설 경기마저 가라앉자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사내에서는 경영이 더 악화되면 권고사직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A 씨는 고민 끝에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안정적인 소득에 대한 미련은 남지만 회사만 쳐다볼 순 없었다”며 “희망퇴직을 하지 않은 동료들은 연봉이 동결됐고, 무급휴직도 신청을 받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올 들어 A 씨처럼 대기업을 퇴직하고 소규모 창업을 준비하거나 영세업체에 취업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내내 일자리가 급감하는 ‘고용 참사’가 이어진 데 이어 올해는 고용의 ‘질’마저 나빠지기 시작했다.

2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월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 취업자는 245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247만3000명)보다 1만4000명 감소했다. 300인 이상 업체의 취업자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했다. 대기업의 월별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과 비교했을 때 1년 동안 한 번도 감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1월(246만9000명)에는 전년 동월 대비 3000명이 줄어드는 등 감소세로 전환한 뒤 두 달 연속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월 기준 5인 미만 영세업체의 취업자(948만3000명)는 지난해 같은 달(933만6000명)보다 14만7000명이나 급증했다. 5인 미만 업체의 취업자는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2개월 연속 감소했고 지난해 11, 12월은 전년 동월과 같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업체 고용자가 감소해 왔으나, 올해 들어 갑자기 취업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전반적으로 고용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나빠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라며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면서 5인 미만 영세업체가 되는 케이스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안정자금 등 정부 보조금 때문에 영세업체 취업자가 늘어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정부 보조금으로 창출한 일자리는 일회성”이라며 “근본적으로는 민간 노동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750만 명이나 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기 시작했는데, 대기업들이 불확실성 때문에 신규채용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일 공시된 대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국내 30대 기업(공기업 및 금융업 제외)의 임직원 수는 50만1413명으로 2017년(49만6066명)보다 5347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반도체 착시’라는 분석이 나온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임직원 10만 명을 돌파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2576명 증가)를 빼면 사실상 감소세다.

유성열 ryu@donga.com·송혜미·황태호 기자
#대기업#일자리#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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