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롯데아울렛 광교점에 최근 문을 연 롯데 ‘탑스’ 매장. 바이어들이 직접 해외를 누비며 유명 브랜드의 신상품이나 재고 상품을 저렴하게 사와 50∼70% 할인해 준다. 롯데백화점 제공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이어서 파리와 영국 런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
최근 롯데백화점 글로벌소싱팀의 5박 7일 출장 일정이다. 조금이라도 싼 공급자를 만나기 위한 빡빡한 스케줄 출장이 다반사다. 이 팀은 회사 내에서 유일하게 해외 출장 시 렌터카 이용이 가능한 팀이기도 하다. 이승주 글로벌소싱팀 치프 바이어는 “이탈리아에 한 번 가면 대도시부터 중소도시 부티크까지 좋은 상품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느라 2000km 이상 운전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이 ‘오프 프라이스 스토어(OPS)’ 사업을 키우고 있다. OPS는 미국 소매업계에서 발전한 새로운 점포 형태로 유명 브랜드의 신상품이나 재고 상품을 유통업체의 바이어가 직접 매입한 후 대폭 할인해 파는 매장을 말한다. 펜디, 버버리, 지방시 등 유럽 명품부터 폴로 랄프로렌, 토미 힐피거 등 해외직구 인기 상품들을 정상 가격보다 50∼70% 싸게 파는 식이다.
롯데는 2015년 말 첫 OPS 점포인 ‘탑스’를 선보인 뒤 지난해 2월 처음으로 글로벌소싱팀을 만들며 본격적인 OPS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웃렛에는 ‘탑스’로, 백화점에는 ‘에비뉴엘 갤러리’란 이름으로 점포를 냈다. 국내 백화점 업계에서는 최초의 실험으로 꼽힌다.
기존 백화점의 운영 문법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글로벌소싱팀은 ‘색다른’ 인재들로 채웠다. 구찌와 생로랑을 운영하는 명품 기업 커링그룹이나 미국의 유명 신발 기업 나인웨스트 등에서 경험을 쌓은 바이어를 스카우트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기존 백화점 고객이 해외직구로 이탈하고,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고객들을 끌기 위해서는 상품이 달라야 한다. 같은 상품이라면 가격이라도 더 저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탑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7개 매장에서 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매출 목표는 300억 원 수준이다. 상반기(1∼6월)에만 롯데백화점과 아웃렛에 9개 매장을 열었고, 다음 달에도 2개가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27년까지 탑스에서 12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롯데백화점이 OPS 실험 같은 새로운 상품 구성을 위한 신사업에 몰입하는 까닭은 최근 유통업체에 닥친 갖가지 위기 때문이다. 국내 백화점은 복합쇼핑몰과 아웃렛 증가로 점점 점포에 넣을 물건이 부족해지고, 좋은 브랜드를 들여오는 데 성공해도 해외직구(직접구매)와 온라인에 밀리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고객을 끌기 위한 차별화를 위해서는 결국 상품과 가격에 대한 주도권을 제조사가 아닌 유통사가 가져가야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승주 치프 바이어는 “기존 백화점에서는 상품과 가격을 결정하는 주도권이 브랜드 제조사에 있지만 직소싱을 하면 그 주도권을 유통사가 갖게 된다. 상품 구성, 가격, 할인폭, 할인 시기를 자유롭게 결정하며 차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룡 아마존이 패션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방위 투자를 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일본의 패션위크를 공식 후원하며 제품의 매입처를 확대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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