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개도 배달… “과일 직접 만져보고 사게 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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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6>전주 서부시장 박찬일-찬성씨

전북 전주 서부시장의 청년상인 박찬일(왼쪽) 찬성 형제는 선배 상인인 부모의 노하우를 물려받아 동주청과를 함께 꾸려가고 있다. 
이들은 동주청과를 ‘전주 최고의 과일가게’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북 전주 서부시장의 청년상인 박찬일(왼쪽) 찬성 형제는 선배 상인인 부모의 노하우를 물려받아 동주청과를 함께 꾸려가고 있다. 이들은 동주청과를 ‘전주 최고의 과일가게’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따라다녔던 어린 시절, 형제에게 전통시장은 따뜻함이 넘치는 곳이었다. 어린아이가 지나가면 상인들이 떡과 과일을 손에 쥐여 주던 그 시절, 시장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다. 시장에 대한 따스한 기억을 갖고 자라난 형제가 시장으로 돌아온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서부시장에 좋은 과일가게가 매물로 나왔으니 한번 같이 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형제는 덥석 받아들였다. 박찬일(30) 찬성(27) 형제는 올해 4월 나란히 동주청과의 사장이 됐다.
○ ‘좌충우돌’ 과일가게 형제의 시장 입성기

이달 6일 전주 서부시장이 시작되는 왕복 2차로에 들어서자 바로 동주청과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약 96m² 규모인 가게 내부에 과일 상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지만 복잡하거나 어수선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요령껏 정리한 가게 내부에서 박 씨 형제의 깔끔한 성격이 드러났다.

원래 형제는 각자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장사 유전자(DNA)’ 때문인지 두 사람은 ‘언젠가 내 가게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형제의 어머니는 10여 년 전부터 전주 남부시장에서 ‘매곡청과’라는 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과일 도매 중개인으로 일했던 아버지도 지금은 이곳 일을 돕고 있다. 과거 거래했던 동주청과가 문을 닫게 되자 아버지는 형제에게 인수해 볼 것을 제안했다.

처음에 형제는 자신만만했다. 아버지가 좋은 과일을 고르고 어머니가 단골손님을 모아온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전’과 ‘실전’은 달랐다. 초반엔 도매시장에서 상한 과일을 가져오는 등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좋은 과일만 팔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비싼 과일을 들였다가 팔리지 않아 상해서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형제간에 의견 다툼도 많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만두라”는 부모의 말에 형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공동 운영 방침을 세워 나갔다.


○ “사과 하나도 무조건 배달” 차별화로 승부


동주청과를 시작한 지 4개월 넘게 지난 지금 형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알 만큼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도매시장에서 좋은 과일을 찾는 일은 형이 맡았고, 동생은 과거 영업직 경험을 살려 영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찬일 씨는 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좋은 과일 고르는 법을 전수받았다. 촉감이 미끌미끌하고 윤택이 나는 사과가 좋다는 것도 아버지에게 배웠다. 처음에 “어떻게 이런 과일을 사 왔느냐”고 혀를 찼던 아버지도 이제 찬일 씨를 믿고 자신의 가게에서 팔 과일을 사다 달라고 맡길 정도다. 가게를 찾아온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찬성 씨의 몫이다. 장사의 기본을 갖춘 형제는 자신들만의 영업 전략을 세웠다.

첫째, 손님이 과일을 만져보고 충분히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일가게에선 과일이 물러지고 상할 수 있어 눈으로만 과일을 고르도록 한다. 하지만 상한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가고 싶은 것이 손님의 마음이다. 찬일 씨는 “만져보고 맛을 봐야 과일을 사고 싶은 건 당연하다”며 “다른 곳과 달리 과일을 고르는 데 부담을 전혀 주지 않으니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둘째, 사과나 레몬 한 개도 전주 시내 어디로든 무조건 배달해 준다. 이윤과 상관없이 손님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다. 한 할아버지 손님이 “수박이 먹고 싶은데 무거워서 들고 갈 수가 없어서 못 산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영업 경력 덕분에 전주 시내 지리를 꿰고 있는 찬성 씨가 배달을 맡았다. 찬성 씨는 “첨에 손해를 좀 보더라도 그로 인해 손님들이 계속 와준다면 결국 가게에 도움이 된다”며 “단기간 이익만 생각하지 않고 멀리 보는 장사를 하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전주를 대표하는 과일가게가 목표

동주청과가 자리한 서부시장엔 최근 형제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 상인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이들은 청년 상인들의 열정이 시장을 살리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찬일 씨는 “시장이 살아나려면 청년 상인들이 젊은 열정으로 같이 뛰어야 한다”며 “내년에 서부시장에 청년몰이 조성되면 더 많은 청년들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주청과가 서부시장을 대표하는 상점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것도 형제의 바람이다. 옛 손님들을 위해 아직 상호를 바꾸지 않았지만 동주청과는 1년 뒤 새로운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할 생각이다. 전주 덕진구 송천동 과일경매장에서 “좋은 과일은 다 매곡청과로 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형제의 자랑거리였다. 이제 부모님의 명성을 뛰어넘는 것이 형제의 목표가 됐다.

“전주 사람들이 과일을 사야 할 때 바로 떠올리는 그런 과일가게를 만들고 싶어요.”

전주=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서부시장#전통시장#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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