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2배크기 온실도 PC 1대로 온도-습도 조절 척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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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農의 진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2>정보통신기술로 무장한 청년농업인

《 축구장 두 개를 합한 크기의 거대한 온실을 통제하는 데에 데스크톱 PC 한 대면 충분했다. 경남 합천군의 수은주가 34.4도까지 치솟은 9일 오후. 야로면의 해발 350m 고랭지에 있는 파프리카 유리온실 내부 온도계는 바깥보다 10도 이상 낮은 2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온실 내부에 설치된 센서가 온도, 일조량을 측정해 PC로 보내면 자동으로 창문이 열리거나 온실 천장에 설치된 커튼이 여닫히면서 온도가 조절된다. 1만9834m²의 거대한 온실을 돌보는 권준혁 씨(28)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된 초보 농사꾼이다. 》

○ PC 하나로 축구장 두 배 온실 통제


경남 합천군 야로면의 스마트팜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권준혁 씨의 유리온실 안은 거대한 크기 때문에 실내라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11일 오후 준혁 씨의 동생 찬혁 씨가 열 감지 카메라로 온실 내부 온도를 측정하기에 앞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합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경남 합천군 야로면의 스마트팜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권준혁 씨의 유리온실 안은 거대한 크기 때문에 실내라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11일 오후 준혁 씨의 동생 찬혁 씨가 열 감지 카메라로 온실 내부 온도를 측정하기에 앞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합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권 씨는 오전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온실 내부 상태를 확인한다. 온도와 습도, 일조량 등이 모두 실시간 그래프로 나타난다.

파프리카는 온도에 특히 민감하다. 생육 기간 중 섭씨 18∼24도의 온도를 맞추지 못하면 당도는 떨어지고 과육은 얇아져 제값을 못 받기 일쑤다. 이렇게 중요한 온도, 일조량을 대부분 파프리카 재배를 위해 프로그래밍된 컴퓨터가 조절한다.

작물에 필요한 영양분도 컴퓨터가 조합해 공급한다. 유리온실 옆쪽에 별도로 세운 건물 안에는 물, 염소, 이산화탄소가 각각 채워진 세 개의 탱크가 있다. 온도와 일조량에 따라 컴퓨터가 공급량과 배합 비율을 달리 조절하는 제어 시스템이 작동하면 자동으로 호스를 통해 영양분이 공급된다.

다 자란 파프리카를 선별해 포장하는 작업도 자동화돼 있다. 180∼240g까지 자란 파프리카는 무게에 따라 S, M, L 사이즈로 나뉜다. 한국 내수시장에 유통되는 파프리카는 220g 이상, 일본에 수출되는 건 이보다 작은 180g짜리다. 수확된 파프리카를 컨베이어벨트에 놓으면 자동으로 측정된 무게별로 나뉘어 박스에 포장된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권 씨는 서울, 대구 등 대도시에서 아파트, 빌딩 등의 전기공사를 하던 엔지니어였다. 부모님이 귀농을 결심한 뒤 함께 합천군으로 내려온 권 씨는 “스마트팜이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 힘만으로 농사짓는 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이 좋다고 소문난 권 씨의 파프리카는 올해 들어 벌써 5억6000만 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3.3m²당 80kg가량의 파프리카를 생산한 그의 내년 목표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90kg으로 늘리는 것이다.
○ 젊은 농업인 끌어들인 정보통신기술

스마트팜은 정보통신기술(ICT)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농업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 스마트팜 농가 가구원의 평균연령은 58.4세. 시설원예농가 평균연령인 62.1세보다 4년 젊고 평균 영농 경력도 4.4년가량 짧다.

특히 다른 농업인에게 스마트팜 운영 기술을 가르치도록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선도농가의 평균연령은 50세로 스마트팜 농가 평균보다도 8.4세, 시설원예농가 전체보다는 무려 12.1세나 젊다. 서울대가 지난해 11월 스마트팜 도입 농가에 대한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이들 선도농가는 나이가 어리고 영농 경력이 짧은데도 생산성은 일반 농가에 비해 29.4% 높고 총수입도 46.8%나 많았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가 알려지면서 스마트팜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스마트팜을 도입한 농가는 2625가구, 면적은 1258ha에 이른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농가 규모도 스마트팜 보급 사업 첫해인 2014년 60ha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64ha로 5배 수준으로 늘었다. 누적 면적은 769ha로 스마트팜의 60%가 보조금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 가업 승계 돕는 스마트팜

스마트팜은 농업을 가업으로 물려받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가업을 물려받아 전북 정읍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황종운 씨(32)는 “토마토 상태를 확인하려고 온실에서 주무시는 아버지가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2013년 고향으로 내려온 황 씨는 지난해 10월 농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총 1만3800m² 규모의 스마트팜을 세웠다. 황 씨는 “이제는 집에 편하게 누워서도 온도, 습도 변화 등을 알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오길원 씨(38)는 “노동력을 30%가량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스마트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감귤 농사에 뛰어든 오 씨는 지난해 10월 스마트팜을 도입했다. ‘보름에 한 번씩 거름을 준다’ 등 어르신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재배 방법은 이제 모두 데이터로 저장된다. 일조량, 강수량 등을 데이터화하면 병충해가 언제 생길지, 감귤 수확 시기는 언제가 좋을지 예측할 수 있다.

대기업들도 스마트팜 도입 농가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SKT는 올해 말(12월 31일)까지 스마트팜을 새로 도입하는 가입자에게 2년 동안 월정액(1만∼2만 원)을 면제한다. SKT는 또 세종시 연동면에서 8264m² 규모의 스마트팜 교육장인 ‘두레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KT는 스마트팜 설비 구축 비용을 40%까지 줄이고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KT GiGA스마트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다만 새만금 산업단지에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 설립 계획을 밝혔던 LG CNS는 농민단체 등의 반발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합천=최혜령 herstory@donga.com / 한우신 기자

#고부가가치#스마트팜#창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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