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의 폭락과 저유가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파생상품시장에 다시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글로벌 증시와 유가가 회복되면서 주가연계증권(ELS) 및 파생결합증권(DLS) 판매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와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4일 현재 파생상품의 발행 잔액은 102조7352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 및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가 70조6757억 원, 원유나 금 등 실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는 32조595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약 98조 원이던 파생상품의 발행 잔액이 올해 2월 5일 100조 원을 넘어선 뒤 꾸준히 100조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4개월 동안 파생상품에 유입된 금액만 4조 원에 이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파생상품의 주요 기초자산으로 쓰이던 H지수와 국제유가가 최근 회복세를 보이자 투자 심리가 회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 ELS의 주요 기초자산으로 쓰이는 홍콩 H지수는 2월 12일 7,500 선까지 떨어졌다가 지난달 중순 9,200 선까지 회복했다. 연간 하락폭을 대부분 만회한 것이다. 연초 배럴당 20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최근 40달러대로 올라서면서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DLS에 대한 투자도 연초보다 늘었다.
여기에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나온 뒤 각 증권사들이 ELS와 DLS를 포트폴리오에 적극 편입한 것도 파생상품 발행이 늘어난 배경으로 꼽힌다.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 증권사들은 일임형 ISA의 적극투자형 포트폴리오에 EL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의 경우 초고위험 포트폴리오에 ELS 비중을 최대 20%까지 설정하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ISA 가입자에게 높은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려면 ELS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기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않을 경우 수익률의 절반을 포기하는 ELS, 월지급식 ELS 등 원금 보장 조건을 강화한 변종 ELS 발행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글로벌 증시의 안정세로 ELS 발행이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특정 자산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가 다시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H지수를 활용하는 ELS의 월간 발행액은 올해 1월 2800억 원에서 2월(1198억 원)과 3월(983억 원) 연속 감소세를 보였으나, 4월 들어 3105억 원 수준으로 늘었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작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ELS의 H지수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LS의 기초자산으로 주로 쓰이는 유로스톡스50지수도 연초보다 7% 이상 하락하며 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제 유가도 산유국의 감산 합의가 실패하면 다시 폭락할 가능성을 안고 있어 파생상품 기초자산의 변동성이 여전히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금융당국은 파생상품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상품 판매 과정의 문제나 상품 판매에 따른 위험요인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ELS나 DLS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볼 방침”이라며 “증권사가 손실을 제대로 회피할 수 있도록 설계, 운용했는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