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무저갱 세대’ 구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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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는 디트로이트 출신 랩가수 에미넘 등을 등장시켜 미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디트로이트에서 
수입(Imported from Detroit)’ 콘셉트의 광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자동화된 크라이슬러 200 생산라인. 유튜브 화면 캡처
미국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는 디트로이트 출신 랩가수 에미넘 등을 등장시켜 미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디트로이트에서 수입(Imported from Detroit)’ 콘셉트의 광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자동화된 크라이슬러 200 생산라인. 유튜브 화면 캡처
박용 경제부 차장
박용 경제부 차장
청년 실업률이 최악이라는 소식을 듣고 몇 해 전 만난 부산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의 40대 사장 A 씨가 떠올랐다. 2006년 창업주인 부친이 갑자기 쓰러지자 그는 경영을 맡아야 했다. 직원들이 동요했고, 협력회사들은 “젊은 사장을 믿지 못하겠다”며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초짜 사장은 하루에 담배 4갑씩 피우며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3년간 생산성을 30% 높이고, 원가를 30% 줄이는 운동을 펼쳐 간신히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그렇게 사장이 돼 갔다.

“젊은 사람들이 냄새나고 몸에 뭐 묻는 일은 안 하려고 해요. 공정 하나 안착시키는 데 사람이 5번 정도 바뀝니다. 월급이 적어 그런 거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가 끙끙대는 고민은 ‘사람’이었다. 당시 그의 회사에서 4∼5년 차 생산직은 연봉 3100만∼3200만 원을 받았다. A 사장은 “연봉 7000만 원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파업한다는 말이 들리면 직원들 보기 미안해 현장에도 안 내려갔다. 괜히 악덕 기업주가 된 것 같아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일감을 주는 자동차회사가 있는 한국을 떠날 수도 없고, 원가와 품질 경쟁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원 급여를 듬뿍 올려주기도 힘들었다. 인력난에 시달리던 그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은행 빚을 내 생산라인을 자동화한 새 공장을 지었다. 그는 “새 아이템을 개발할 때 인력을 최소화하는 공정부터 고민한다”며 “되도록 기계에 다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라고 다를까. 정도만 다를 뿐이다. 기업 회계에서 사람 채용은 비용, 생산설비 구입은 투자로 잡힌다. ‘비용을 줄이고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사람을 줄이고 공장을 자동화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인구 감소와 인건비 상승을 걱정하던 제조업 강국 독일이 기계화, 자동화, 지능화된 생산 공정을 구축하는 ‘4차 산업혁명’의 발원지가 된 것이나 테슬라가 저렴한 전기차를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식의 ‘흑마술’이 가능한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은 공장의 블루칼라 일자리를 로봇과 기계로, 금융 의료 등의 중산층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인공지능(AI)과 컴퓨터로 대체하는 ‘노동의 자본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노동을 자본 투자로 대체한 대기업은 성장하더라도 일자리와 소득을 그만큼 돌려주지 못하니 본전 생각이 난 사람들은 대기업에 증세(增稅)와 사회적 책임을 더 강하게 요구하게 된다. 청년 실업은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야당 공약처럼 대기업들이 청년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주면 좋지만, 이 역시 희망사항에 가깝다. 글로벌 경쟁을 하는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진화를 포기하고 ‘역(逆)선택’을 하라는 ‘자살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대간 갈등에 대한 우려도 있다. ‘박원순 수당’이나 ‘이재명 배당’처럼 청년들에게 세금을 나눠주는 것은 진통제이지 근본처방은 아니다. 연봉 7000만 원의 대기업과 연봉 3000만 원의 A 사장 회사가 공존하는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에서 청년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미루고 대기업 취업에 이 돈을 투자하는 ‘합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이 자본으로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괜찮은 청년 일자리가 나올 곳은 뻔하다. 기술을 설계하거나 개발하는 엔지니어와 같이 사람의 지식이 비용이 아닌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뿐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이런 일자리를 누가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언제까지 만들겠다는 구체적 대안을 여야 모두 내놓지 못했다. 목표 숫자만 있었지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할 방법론은 보이지 않았다. 민심이 실망한 건 당연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청년 일자리를 어떻게 늘릴 건지 구체적 청사진을 들고 내년 대선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야당 탓을 하고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야당이 이 법을 의료공공성 논쟁의 불쏘시개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동안 청년 실업의 시한폭탄은 재깍재깍 간다. 자신의 일자리는 온몸을 던져 싸우면서 나라의 미래인 청년의 고민은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은 죄 없이 끝 모를 청년 실업의 나락에서 헤매는 ‘무저갱(無底坑) 세대’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청년 실업률#무저갱 세대#크라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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