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로 생활비 쓴 저소득층, 5년동안 5배로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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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2010∼2014년 신용대출 분석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 씨(54·여)는 지난해 9월 월세보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축은행에서 500만 원을 빌렸다. 상호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1200만 원의 이자를 더해 이 씨가 내야 하는 월 이자도 25만 원으로 늘었다. 월급이 채 150만 원이 안 되는 이 씨는 대학을 졸업한 아들의 취업만 기다리고 있지만 졸업한 지 1년이 넘도록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 씨는 “이자는 근근이 갚고 있지만 원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체 가계대출이 1130조 원을 넘어서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저소득층이 대출받은 돈을 사용하는 용도가 질적으로 크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빚을 내는 저소득층이 늘고 있고, 빚으로 빚을 갚거나 전·월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빚에 짓눌려 허덕이는 저소득층에 맞춘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1일 동아일보가 통계청의 최근 5년간(2010∼2014년) 소득분위별 신용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소득 최하위 20% 가구 중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은 비중은 29.9%로 5년 전인 2010년(6.3%)에 비해 23.6%포인트나 늘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빌린 돈은 대부분 악성 가계부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최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6만 원이었다.

이들이 신용대출금을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은 사업자금 및 영농자금 마련(30.8%)으로 5년 전에 비해 18.1%포인트 늘었다. 이밖에 경조사비 의류비 등 기타 용도 지출(15.6%), 부채 상환(11.3%), 전·월세금 마련(9.0%) 순으로 신용대출금을 사용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기타 용도 지출은 56.4%포인트 줄어든 반면 전·월세금 마련은 8%포인트, 부채 상환은 5.8%포인트 늘었다.

저소득층이 생활비 마련이나 부채 상환 등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회성으로 써버리는 대출금의 비중이 늘면서 저소득층의 소비성향도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비성향은 2010년 118.2%에서 지난해 104.1%로 14.1%포인트 떨어졌다. 예전에는 이들이 100만 원을 벌어 118만2000원을 소비에 지출했지만 이제는 소비지출을 14만1000원 줄였다는 뜻이다. 이런 소비성향 감소는 내수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하위 20% 가구가 돈을 빌리는 금융회사는 주로 제2금융권이나 비제도권 금융회사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최하위 20% 가구가 신용대출을 받은 금융회사 중 금리가 비교적 낮은 시중은행의 비중은 32.3%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소득 최상위 20% 가구의 71.7%, 전체 신용대출자의 59.3%가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비율이 상당히 큰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낸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10개 저축은행의 평균금리는 28.6%다. 또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캐피털사의 상당수가 신규 신용대출 평균금리를 20% 이상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대부업체들은 대출 시 법적 최고 이자율(34.9%)을 적용하고 있다. 시중은행 이용률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은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가계부채에 더욱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인 저소득층 소득개선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정부는 서민금융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저소득층의 대출한도를 늘렸지만 지금은 부채 증가세를 잡는 것이 시급하다”며 “채무조정이 필요한 계층에 직접 일자리 상담을 해주는 등 저소득층이 소득을 늘려 빚에서 근본적으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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