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최종학]롯데는 소액주주 - 국민에게 머리 숙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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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요즘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3월 장남 신동주 부회장을 해임했던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이 돌연 7월 말 일본과 한국롯데의 주요 이사진과 차남 신동빈 회장을 해임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내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다툼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그룹을 개인 사유물처럼 취급하며 임원들을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다고 거리낌 없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마치 자신이 그룹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주인은 과연 누굴까? 한국롯데의 대표회사인 롯데쇼핑을 보자. 차남은 13.46%, 장남은 13.45%, 부친은 0.93%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모두 합쳐도 30%에 못 미친다. 그 외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 약 35%, 나머지 약 35%를 소액주주들이 가지고 있다. 기타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 구조를 살펴봐도 신 총괄회장 일가의 지분은 대부분 이 정도거나 이보다도 작다. 즉,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집단은 대주주 일가가 아니라 소액주주들이다. 즉, 롯데쇼핑, 나아가 한국롯데의 실제 주인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주주들이다. 그런데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양측은 아직까지 소액주주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실제 주인은 따로 있는데 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주인이라고 다투는 형국이다. 주주들 외에도 20만 명이 넘는 임직원과 협력업체도 모두 이 사건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다. 이들에 대해서도 일언반구도 없다.

불과 한 달 전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시켜 그룹의 후계 구도를 명확하게 하려 했다. 그렇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우호세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20%에 불과했다.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선언하자 삼성은 전 계열사가 나서서 합병 성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결국 국내외의 많은 주주들이 삼성 편을 들었기 때문에 합병이 승인되었다. 주주들의 협력을 얻기 위해 삼성그룹은 주주 중심의 경영을 하고 기업지배 구조 개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수행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다. 이런 약속이 없었다면 소액주주들이 삼성 편을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롯데의 대주주 일가도 삼성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롯데는 누구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주, 직원, 협력업체,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것이다. 특히 롯데는 유통, 관광, 식품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으로, 국민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계 서열 5위에 오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미칠 영향은 모두 무시하고 개인 마음대로 임직원을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이다. 누가 예쁘거나 말을 잘 들어서가 아니라 누가 회사를 가장 잘 경영하여 발전시키고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잘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서 경영진을 임명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의 실제 주인인 주주들을 설득해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지배 구조의 모범 사례로 칭찬받고 있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에서는 발렌베리그룹의 최고경영자(CEO)로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①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할 것 ②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강인한 정신력을 기를 것 ③세계적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서 실무 경험을 쌓을 것이다. 이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가문의 장자라도 CEO가 될 수 없다. 롯데도 발렌베리그룹을 교훈삼아 충분한 경영능력을 갖춘 CEO를 선임해야 국민이나 주주,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라. 롯데는 몇몇 개인의 것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 후계 구도가 결정된다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벌써 정치권이 나서서 비판을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반기업 정서를 표출하면서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하기 시작했다. 롯데가 이번 사건을 해결한다고 해도 이런 반감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회사의 생존이 불투명할 수도 있는 위기다.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앞으로 불투명한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고려하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모습으로 경영 행태를 바꾸어 가기 바란다. 그것이 롯데가 새로 태어나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신격호#롯데#소액주주#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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