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판매로 본 ‘2014 소비심리’
차량주유-통신기기 구매 줄고… 남성복 매출도 11분기째 감소
불황에 잘 팔리는 립스틱은 호황… 유통업계, 연말 실적개선 안간힘
“부진한 겨울세일 실적을 반전시켜야 합니다.”
최근 이원준 롯데백화점 대표는 임원회의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해 대비 롯데백화점의 올해 겨울세일 기간(11월 21∼29일) 매출 신장률은 2.3%(기존 점포 기준)에 그쳤다. 지난해 겨울세일 기간의 매출 신장률은 10% 안팎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올 한 해는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언급하기도 했다.
국내 주요 유통기업들이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업계는 상반기(1∼6월) 소비 침체는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보고 추석을 계기로 경기가 반등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은 열릴 줄을 모른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뭘 해도 닫힌 지갑이 열리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올해 1∼10월 통계청,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백화점의 상품별 판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상품군에서 전반적인 소비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집계한 1∼10월 전체 소매 판매액은 지난해보다 1.8% 늘어 겨우 물가상승률 수준을 유지했다. 소비자들은 먹고 입고 마시는 데에는 지난해 수준을 유지한 반면 차량연료(―3.0%)와 통신기기 및 컴퓨터(―9.6%) 분야에서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 다만 ‘불황에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속설대로 화장품(9.0%) 등 일부 분야의 소매 실적은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에서는 특히 상품별 희비가 뚜렷이 나타났다. 명품은 비교적 선방했다. 서울 강남 지역에 주요 점포를 둔 현대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전체 백화점 명품 매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10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9.9% 늘었다. 식품 매출도 대개 증가세였다. 본점 식품관을 리뉴얼해 재개관한 신세계백화점에서는 3분기(7∼9월) 식품 매출이 8.9% 올랐다. 최근 소비자들이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져 ‘맛집’에는 지갑을 연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경기에 민감한 상품인 남성 의류 매출은 주요 백화점에서 2012년 1분기(1∼3월)부터 올해 3분기까지 11분기 연속 줄어들었다.
월별로 보면 세월호 사건 여파가 미친 4월에는 아동·스포츠, 명품을 제외한 모든 상품군의 매출이 전년에 비해 줄었다. 정부가 9·1부동산대책 등 경기 부양 정책을 내놓았던 9월 이후에도 소비자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대형마트 매출 증가율은 9월에 ―10.1%, 10월 ―0.9%를 기록했고 백화점도 9월(―6.3%)과 10월(―2.2%) 모두 매출이 줄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실질임금 상승률 제로, 가계부채 부담 증가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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