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에서 강성 노동조합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한국GM 등 최근 강경파 노조위원장이 취임한 기업에서는 큰 폭의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파업→협상 타결→격려금 지급’으로 이어지는 일부 기업의 노사 관행이 강성 노조가 세력을 확대하는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강성으로 분류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수는 60만4705명으로 1년 전(56만2310명)에 비해 7.5%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조합원 수는 76만8953명에서 80만8664명으로 5.2% 늘었다.
최근 대규모 사업장에 강성 노조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8일 조합원 선거를 통해 20대 위원장으로 정병모 씨(56)를 선출했다. 정 씨는 강성으로 분류되는 군소조직 연합인 ‘노사협력주의 심판연대’ 소속으로 조건 없는 정년 연장과 기본급 인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대중공업에 강성 노조가 들어선 것은 2001년 이후 12년 만이다. 1995년부터 올해까지 19년째인 무(無)분규 타결 전통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신임 노조위원장 선거를 진행 중인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기아차 노조)는 강성인 ‘민주노동자회’ 김종석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김 후보는 18일 결선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해 찬반 투표를 거쳐 당선 여부가 정해진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한국GM 노조)는 1일 강성인 ‘전진하는 노동자회’ 소속 정종환 지부장이 이끄는 새 집행부를 출범시켰다. 금속노조 르노삼성자동차지회(르노삼성차 노조)도 지난달 새 집행부를 꾸렸다. 앞서 7월에는 금속노조 두산엔진지회(두산엔진 노조)가 2010년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에서 분리된 후 첫 부분파업을 벌였다.
다음 달 5일 실시될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현대차 노조위원장) 선거에는 5명이 출마했다. 이들 가운데 ‘민주현장’의 민주철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과 ‘금속연대’ 김희환 의장, ‘금속민투위’ 손덕헌 지부 감사위원 등 3명이 강경파로 분류된다.
“왜 저쪽만큼 안 올려주나” 박탈감이 ‘강성’ 부추겨
강성 노조 바람이 거세지는 것은 파업을 통해 협상 국면을 유리하게 이끄는 일부 강성 노조의 전략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노조원들에게 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중공업은 과거 현대차에 비해 임금이 높았지만 최근 조선 업황이 악화돼 임금 인상 폭이
줄어들자 노조원의 반발이 거세졌다”며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벌여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게 된 것이 현대중공업에서 강성 노조가
출범한 배경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업체별 임금 격차가 커진 것도 강성 노조가 등장하는 배경이라는 시각도 있다.
남용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대책본부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경제성장률과 임금 인상 폭이
엇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며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업체별 실적이 엇갈리며 임금 격차가 커지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근로자들이
강성 노조를 원하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상당수 대기업이
임금 인상으로 근로자들의 불만을 달래 왔으나 업종별 경기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높은 인건비를 부담한 채 외향적인 노사
안정을 가장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기업들이 내부 사정을 노조에 공개하고 성실하게 설득하며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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