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향 아파트형 인재로는 대한민국 미래가 뻔하잖아요”

■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김용근 원장 인터뷰

“안전만을 추구하는 ‘아파트형 인재’를 양산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56)은 요즘 ‘창의’와 ‘융합’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열심히 공부만 해서 선진국을 따라잡던 시대는 끝났다’는 지론에서다. 국가기술 연구개발(R&D) 사업의 저변 문화를 계획하고 진흥시켜야 할 책임자로서 느끼는 위기감은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초중고교 기술교육의 부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기술교육의 내실이 사라졌다. 문제가 크다. 일부 학교에서는 가정이나 간호선생님이 기술을 가르치는 일까지 왕왕 벌어진다. 과학시간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세트를 사서 조립하는 것이 전부다. 안락한 아파트가 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획일적인 ‘아파트식 교육’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아파트식 교육’이란 표현이 인상적인데….

“미국만 해도 ‘개리지(garage·창고) 교육’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다. 아빠와 함께 자동차도 고치고 컴퓨터도 조립하면서 기술자의 꿈을 키워보는 것이다. 애플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유수한 벤처기업들이 이런 주차장에서 탄생하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는 기술은 경원시하고 숫자가 정해진 안락한 직장을 두고 엘리트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도전적 창업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창업전선에 나서는 것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됐다. 진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을 갖고 도전을 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그 도전에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기술이다. 사회적으로도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형성이 필요해졌다.”

―최근 국내 산업기술 발전을 위해 ‘R&D 3.0’을 주창하는데….

“이제껏 국가 R&D 정책이란 게 연구주제를 국가가 정하면 기업이 따라하는 수준에 그쳤어요. 이제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탈바꿈해야 한다. 모방(1.0)하거나 추격(2.0)을 넘어 기술과 인문학, 예술의 분야가 서로 융합해 오리지널한 기술을 창조해야 한다. ”

―중소기업 가운데 R&D 3.0 성공사례가 있다면….

“눈을 크게 뜨고 찾아다니다 발견한 기업이 조명기기 업체인 ‘필룩스’다. 이 회사는 단순히 빛을 다루는 제작에 머물지 않고 조명을 ‘문화를 창조하는 기술’로 정의하고 세계 최초로 ‘감성조명’ 분야를 개척했다. 서구 선진기업은 물론이고 제조대국 중국도 감히 필룩스의 혁신을 따라잡지 못한다. 이런 기업이 많아져야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선진국의 문이 열린다.”

―정부의 R&D 정책이 지나치게 안전지향이란 비판이 있다.

“선진기술을 모방하던 시절에는 98%란 성공률이 자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창의와 융합의 시대에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오히려 R&D의 실패 경험은 소중한 공공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R&D 3.0’의 핵심 정신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은 10곳에 투자해 1곳만 성공해도 ‘대박’이라고 말하지 않나?”

―기술교육의 저변 확대를 위한 산업기술진흥원의 노력이 중요해졌다.

“아이와 학생들이 손쉽게 기술에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시급하다. 학교에 ‘기술공작실’을 설치하고 학교 밖에는 지자체와 함께 ‘창의공작플라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전국의 모든 아파트 내에도 학생들을 위한 공작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천편일률적인 교육문화를 깨기 위한 실험실이 필요해졌다.”

진흥원은 ‘산업기술문화공간’(가칭) 건립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기술사를 정리하고 유물을 수집, 전시하는 공간이다.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아이들이 기술을 체험하면서 창의성을 키우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 김 원장은… ::

▲1956년 순천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 23회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장, 국장, 산업정책관, 산업정책본부장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