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태 예보 감독관 “점령군? 나도 퇴출銀 출신이라 직원 심정 이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7일 03시 00분


■ 고복태 예보 감독관이 겪은 ‘저축銀 사태’

“제가 국제통화기금(IMF) 퇴출은행 출신이다 보니 점령군을 맞는다는 기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6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고복태 예금보험공사 감독관(58·사진)은 솔로몬저축은행에서 부실채권 관리업무를 맡은 이후로 말이나 행동을 늘 조심한다고 털어놓았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위기 당시 문을 닫은 경기은행 출신인 고 감독관은 실직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축은행 직원들에게 자신이 마치 점령군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3개월 전 고 감독관은 공교롭게도 솔로몬과 미래저축은행 퇴출사태 현장에 모두 있었다. 그는 경기은행에서 20년간 일한 뒤 2002년 예보로 옮겨 최근 정년퇴직을 맞았다. 예보의 퇴직자 재취업 프로그램에 따라 현재 솔로몬저축은행에서 부실채권 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한참 어린 저축은행 직원들에게도 존댓말을 쓰고 회식 자리에선 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린다. 그는 “금융지주에 인수되더라도 구조조정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저축은행 직원들이 매우 불안해한다”며 “이들을 자극하지 않고 매각과정에서 원활한 협조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20개의 저축은행이 줄줄이 영업정지를 당한 가운데 예보는 이들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자산을 매각하는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다. 이 중 저축은행 업계 1위였던 솔로몬저축은행은 우리금융지주에, 미래저축은행은 J트러스트로 인수되는 것으로 지난달 결정됐다.

그는 “혹시나 모를 저축은행 임직원의 동요와 회계부정을 막기 위해 감독관들이 꼭두새벽부터 출동했다”고 미래저축은행의 영업정지 당일인 5월 6일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우리도 각자 자신이 맡을 저축은행 이름을 전날 밤에야 통보받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예보 감독관들은 오전 2시 반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2동 미래저축은행 본점 앞 사거리에 모여 한참 동안 잠복에 들어갔다. 오전 4시경에야 이들은 미래저축은행 본점에 들이닥쳐 이 저축은행의 심장부인 전산실로 곧장 향했다. 이 회사 전산실장과 직원들은 이미 예감했다는 듯 이들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고 한다.

전산실 장악과 함께 인터넷 뱅킹을 비롯한 미래저축은행의 모든 금융거래가 즉각 차단됐다. 곧이어 형사입건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제외한 이 회사 핵심 경영진이 본점으로 불려나왔다. 예보 감독관들은 경영진으로부터 법인카드와 차량 열쇠, 법인 인감, 금고 열쇠를 압수해 점령군 임무를 마쳤다.

고 감독관은 이후 자신과 예보의 역할은 좋은 가정에 입양 보내기 위해 잠시 아이를 맡아 키우는 위탁모로 바뀌었다고 여긴다. 저축은행 예금자의 자산을 보호하고 임직원의 고용을 이어가도록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함께 땀 흘리는 저축은행 직원들이 새로운 회사에서도 고용을 이어간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고복태#저축은행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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