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영캐주얼 매장의 모습. 조도를 낮추고 지그재그로 상품을 진열해 어두운 뒷골목 분위기가 나도록 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길거리 상권을 위협하며 쇼핑의 ‘메카’가 된 백화점들이 최근에는 거꾸로 길거리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독특한 패션 브랜드와 젊은 문화, 카페가 어우러진 길거리 상권이 20, 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매력적인 쇼핑 중심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주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백화점이 계속 승승장구하려면 무엇보다 젊은 층을 끌어들여야 한다”며 “스트리트 문화를 들여오는 건 백화점의 정형화된 틀을 깨고, 놀이공간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스트리트 패션을 ‘모셔라’
인정희 신세계백화점 진 캐주얼 바이어는 평소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과 홍익대 인근을 자주 찾는다. 여성들이야 백화점이 친숙하지만 멋내기에 눈뜬 남성들은 백화점보다 길거리 상권을 더 선호하는 게 고민이었다. 인 바이어는 “스트리트 패션을 백화점에 들여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며 “대형 유통업체인 백화점이 벤처회사처럼 톡톡 튀는 거리의 브랜드들과 만나면 서로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각 브랜드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가로수길 등에서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탄 국내외 길거리 브랜드 30여 곳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스트리트 패션 페어’를 18일부터 3일 동안 열기로 했다. 백화점과 스트리트 패션이 함께 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브라운 브레스’는 서인재 대표(31)를 비롯한 20, 30대 디자이너들이 만드는데 홍익대 앞이나 가로수길뿐 아니라 일본 루미제 백화점 등에도 진출해 주목받는 브랜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일부 마니아층에게만 사랑받던 스트리트 브랜드를 고급 백화점이 모셔가려고 발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 카페 골목을 백화점으로
롯데백화점 서울 본점 지하의 ‘커피 스트림’. 길거리 상권에서 인기 있는 카페들을 나란히 들여와 카페골목같은 분위기를 냈다. 롯데백화점 제공고급스러움과 깔끔함이 특징이던 백화점의 인테리어도 길거리를 흉내 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3월 본점 지하 1층에 화장품 및 생활용품 매장이 늘어서 있던 자리를 일종의 카페골목인 ‘커피 스트림’으로 확 바꿨다. 약 330m²(약 100평) 규모에 주요 길거리 상권에서 인기를 얻은 ‘폴 바셋’ ‘스노우 마운틴’ ‘홈스테드’ 등 카페 3곳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가로수길의 카페 문화를 백화점에 들여온 셈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어디에나 있는 뻔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보다 트렌디한 길거리 상권에서 인기를 얻은 카페 브랜드를 중심으로 꾸며본 것”이라며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서 백화점 고객뿐 아니라 명동을 찾은 젊은 층도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010년 점포를 리뉴얼하면서 5층 영캐주얼 매장 전체를 ‘어두운 뒷골목’ 분위기로 바꿨다. 천장과 바닥 마감재를 검정이나 회색 톤으로 꾸며 전체적인 조도를 낮추고, 마네킹이나 상품만 밝게 노출되도록 부분 조명을 설치했다. 또한 바둑판 형식의 매장을 지그재그형으로 바꿨다.
신세계백화점 인테리어팀 엄주언 팀장은 “골목 문화에 익숙한 젊은 고객들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점포의 지난해 영캐주얼 매장 매출은 전년 대비 28%, 고객 수는 25% 늘어났다. 효과를 보자 신세계는 영등포점과 충청점도 비슷하게 리뉴얼한 데 이어 4월 문을 연 의정부점의 영 캐주얼 매장도 뒷골목 분위기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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