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보이가 별명” “사회경험이 대학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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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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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銀, 21년만의 남자 고졸 공채 현장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4층 회의실 앞. 교복 차림의 남자 고교생 30여 명이 빳빳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운동화만 쳐다보던 학생들은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하나둘씩 초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학생들을 데리고 온 교사들도 팔짱을 낀 채 주변을 서성였다.

“지금부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호명된 학생 5명이 일어났다. 한 학생이 선생님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선생님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이팅!”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습니다. 친구들이 저를 ‘스마트 보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대인관계가 원만합니다. 전교 부회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가 시작되자 ‘대졸 공채’ 못지않은 불꽃이 튀었다. 씩씩한 목소리로 회의실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너도나도 “최고의 은행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물론 구체적 내용은 빈약했지만 열정만큼은 20대 취업준비생들 못지않았다.

기업은행은 1991년 이후 처음으로 창구 텔러, IT, 시설관리 직군에서 남자 고졸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만큼 계약 기간은 1년이지만 근무성적이 우수하면 연장이 가능하다. 연봉도 2300만∼2600만 원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채용 인원은 30여 명.

면접관들은 어린 학생들이 지나치게 긴장하다 실수하거나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왜 이렇게 말을 잘해요. 다 연습해 온 거예요? 외워서 책 읽듯이 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여요. 자연스러운 게 제일 중요하고요. 무엇보다 기업은행에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진욱 경영지원본부 부행장(57)이 나서자 학생들은 그제야 힘을 뺐다. 면접관들은 초반엔 편안한 질문을 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질문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응시자들은 날카로운 질문도 예상했다는 듯 능숙히 답변해 나갔다.

“대학에 가서 캠퍼스 생활도 해보고 싶진 않나요?”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가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습니다. 기업은행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건 대학 공부 못지않습니다.”

“기업은행 홈페이지를 본 적 있나요?” “경쟁 은행에 비해 너무 복잡합니다.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개선해 보고 싶습니다.”

면접관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왜 전부 헤어스타일이 똑같죠? 머리를 앞으로 다 내렸네. 요즘 유행인가?” 임대현 인사부장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한 학생이 답했다. “선생님들이 단정해 보여야 한다며 이렇게 하고 가라고 조언하셨습니다.” 면접관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박 부행장이 친절히 설명했다.

“선생님께서 많이 불안하셨나 보네요. 은행원은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갖추는 게 제일 중요해요. 학교를 졸업하면 가급적 단정하고 시원한 스타일로 바꿔보세요. 알았죠?”

30여 분간 진행된 면접은 이처럼 한 편의 ‘특강시간’ 같았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기업#고용#취업#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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