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정경준]벤처도 정치도 핵심은 ‘품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치인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4·11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요즘엔 신문 정치기사를 유심히 보게 된다. 비록 활동무대는 다르지만 정치 신인과 필자의 관심사인 벤처 창업가는 많이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치 신인은 돈을 끌어와 인재를 모아야 하고, 자신을 널리 알려야 한다. 창업가가 하나하나 갖춰야 하는 재무, 인사, 마케팅 기능과 같다. 젊고 개성이 뚜렷하지만 현재 가진 게 없어 뜻한 바를 이루려면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좌절하기도 하고, 갈피를 못 잡고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정치 신인 가운데 김지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는 단기간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우리 해군을 해적에 빗댄 것이 이슈가 됐다. 자신의 신념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는지, 국민 대다수의 분노를 낳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좌파 세력을 결집시켜 국회 입성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벤처기업 김지윤’이 먼저 알아야 할 덕목은 ‘품질’이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진공관 라디오에 집착한 미국의 전자업체들을 예로 들며 기업의 잘못된 습관의 하나로 ‘품질에 대한 착각’을 거론했다.

미국 전자업체들은 1947년 벨연구소가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뒤로도 여러 해가 지나도록 정교하고, 크고, 값비싼 진공관 라디오를 ‘고(高)품질’이라 믿었다. 그러나 소비자는 가볍고, 싸고, 고장이 적고, 진공관을 갈아 끼울 필요가 없는 소니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원했고, 결국 미국 라디오 시장은 일본이 장악했다. 품질은 공급자가 아니라 고객이 느끼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대상이라는 얘기다. 선거에서도 후보의 품질은 유권자가 평가한다.

공천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줄 대기에 바쁜 정치 신인들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창업 지원금을 타거나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벤처 창업가들과 겹쳐 보인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최근 개최된 동아일보 ‘2040 열린 포럼’에서도 청년 창업가들은 “투자자가 알아주지 않는다”, “창업자금 지원이 특정 업종에만 집중된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멘토로 나선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그런 ‘푸념’에 대해 강도 높게 질타했다. “청년창업 지원제도? 이런 것 기대하지 마세요. 여러분처럼 훌륭한 사람들은 그런 것에 기대지 않고도 잘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다 같이 지원해주면 오히려 경쟁자가 많아져 똑똑한 사람들이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박 부회장의 쓴소리는 계속됐다.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 싫습니다. 기업은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토론한다고 돈이 됩니까? 시장에 나가 물건을 팔아야 할 게 아닙니까. 뭐가 팔리는지 공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자친구가 팬택에 다니는데 너무 바빠 얼굴도 못 본다고요? 그게 싫으면 사귀지 마세요.”

창업가의 치열함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도 마찬가지였다. 1879년 그의 연구팀은 주로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내리 일했다. 방문객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로지 실험에 몰두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많은 정치 신인, 벤처 창업가들이 이런 각오로 뛰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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