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적정 기름값 1880원”… 정유사 옥죄기 2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6일 03시 00분


임종룡 차관, 십 원 단위까지 거론하며 강공
업계 “이럴거면 아예 정유사 다 국유화 하라”

‘묘한 기름값’을 두고 정부와 석유업계의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상반기 거듭되는 정부 압박에 L당 100원 내린 업계의 ‘성의’로 1차 대전이 신사적(?)으로 마무리됐다면 이번 2차 대전에는 시민단체까지 동원한 정부의 압박에 업계가 “해도 너무한다”며 반발하는 양상이다. 2차 석유대전이 본격적으로 터졌지만 소비자들은 시큰둥하다. 정부는 큰소리만 쳤지 기름값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고 업계는 말로만 100원 할인을 내세웠지 실제로는 고통 분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게 소비자들의 지적이다.

○ “1880원이 적당… 올릴 이유 없다”

서울 평균 휘발유값이 2019.27원을 기록한 15일,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물가대책회의에서 “적정 기름값은 1880원”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설정한 2000원 가이드라인이 힘없이 무너지자 아예 10원 단위 가격까지 들이밀며 강공에 나선 것이다. 임 차관은 “현시점에서 과연 기름값을 올릴 이유가 있는지 극히 의심스럽고 할인가격 환원을 이유로 한 소비자가격 인상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며 업계를 몰아붙였다. 재정부는 그 근거로 이날 ‘소비자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 발표한 자료를 내놨다. 소시모는 올해 1분기 L당 99.88원이던 주유소 평균 마진이 7월에는 142.83원까지 올라 업체들의 지나친 마진이 기름값 고공행진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선임부처가 시민단체의 분석 자료를 회의석상에 올리고 언론에까지 배포한 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특정 제품에 정부가 직접 적정 가격을 매겨 발표한 것도 전례가 없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가 100원 할인하겠다는 말만 요란하게 했지 소비자들이 체감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소비자단체의 분석 내용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이제는 안쓰럽다” 비꼬는 업계

정부가 또다시 기름값 압박에 나서자 업계는 일제히 강도 높은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재정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가 다 동원돼 ‘묘한 기름값’을 분석한다고 몇 달간 난리를 쳐놓고 정유업체가 잘못했다는 근거를 하나도 내놓지 못한 게 불과 석 달 전 일”이라며 “소비자를 위한 시민의 모임의 데이터를 근거라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정부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의 불만 수위는 4월 기름값을 내릴 때보다 오히려 더 높다. 정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석 달간 기름값을 인하하는 성의를 보였는데도 정부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배신감 때문이다. 더욱이 유류세 인하 등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하나도 꺼내 놓지 않으면서 기업만 몰아세운다는 비판도 많다.

한 정유업체 임원은 “경제 관료라는 사람들이 시장 상황이나 경쟁 논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것 아니냐. 이럴 거면 아예 정유업체들을 다 국유화하고 나라에서 기름을 팔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기름값만큼 투명하게 가격구조가 공개되는 시장은 없다. 국제 가격, 국내 공급가, 국내 판매가가 거의 실시간으로 모두 공개돼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나 업계나 결국 소비자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일부러 ‘오버액션’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특히 정부로서는 상반기 내놨던 각종 물가대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만큼 말이라도 강도 높게 해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중경 지경부 장관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라”고 촉구하고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2000원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음에도 약효가 나오지 않는 이상 정부로서는 초강공 드라이브 말고는 뾰족한 수단을 꺼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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