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돈 냄새를 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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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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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놀이터처럼 점포 단장… “스킨십 통해 미래고객 모시기”

《 지난해 12월 말부터 서울 중구 명동에는 ‘디지털 온실’이 생겼다. 명동을 지나는 누구나 이 건물 1층에 들러 직원에게 ‘그리니 팟(Greeny Pot)’을 주문하면 나무 소재로 꾸며진 아이팟을 준다. 이 공간 곳곳을 거닐다가 스피커가 달린 곳에 멈추면 바람소리, 웃음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이팟 프로그램의 가상 식물이 쑥쑥 자란다. 그 옆에는 ‘탄소 저장고’로 불리는 맹그로브 숲을 보호하기 위해 기부할 수 있는 함이 있다. 돈을 넣으면 ‘당신의 기부로 나무가 살아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
1층에 휴식 공간이 설치된 서울 명동 하나은행의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 제공 하나은행
1층에 휴식 공간이 설치된 서울 명동 하나은행의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 제공 하나은행
이곳은 환경보호 기관도, 디지털 매장도 아니다. 하나은행이 개장한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brand flagship store)’다. 1층에서 훈훈한 느낌을 받고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 일반적인 은행 상담이 진행된다. 매장을 들른 김라영 씨(21)는 “은행이라기보다 놀이터 같은 느낌이 든다”며 “우리 또래에게 은행은 딱딱한 이미지가 강한데 이곳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딱딱한 점포가 따뜻한 휴식처로

과거에 단순히 돈을 빌리고 맡기는 역할만 했던 은행 점포들이 이제 좋아하는 식물을 키우고 커피를 마시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은행 점포는 돈을 다루는 공간이라 냉정하고 차가운 곳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제 그런 이미지를 벗고 고객에게 더욱 친근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은행들이 점포 변신에 나선 것은 올해 국내 금융권이 각종 인수합병(M&A)을 마무리하고 새 진영을 갖춘 뒤 강력한 영업전쟁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세환 하나금융지주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미국에서 1990년대 금융권 M&A가 마무리된 뒤 ‘고객으로 돌아가자’는 바람이 불었다”며 “국내도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선보이려면 고객과의 스킨십이 강한 영업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씨티은행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유독 음악과 그림이 눈에 띄는 점포를 열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고객에게 금융서비스 외에 휴식공간을 마련한 뒤에 고객들이 더 편하게 은행 점포에 들러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은행업무를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책과 편안한 의자 등을 구비한 한국씨티은행 압구정 중앙지점. 사진 제공 한국씨티은행
책과 편안한 의자 등을 구비한 한국씨티은행 압구정 중앙지점. 사진 제공 한국씨티은행

○ 젊어져야 미래 고객을 선점한다

일부 은행은 아예 점포를 ‘젊은 공간’으로 특화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안에는 최근 ‘락스타존’이 문을 열었다. 이 대학 학생들이 커피를 마시고 자유롭게 세미나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쪽에서는 청바지에 캐주얼한 상의를 입은 20, 30대 직원들이 재테크 상담을 해주고 있다. 대학생 고객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점포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직접 이 점포 개점식에 참석해 “본격적인 스마트뱅크 도입에 앞서 뉴미디어를 활용해 신세대의 수요를 반영한 공간”이라며 “앞으로 더욱 특화된 락스타존을 마련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민은행은 숙명여대에 이어 서울에 12개, 충청권에 9개, 영남권에 10개, 호남권에 5개 등 다음 달 말까지 총 42개 락스타존을 개점할 예정이다.

SC제일은행은 지난달 디지털 지점을 강남역 근처에 처음 선보였다. 전자태그 번호표를 받은 고객이 이 지점의 출입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곳의 지점장과 담당 직원은 바로 고객의 방문 신호를 받는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신속하게 서비스를 받게 하기 위한 배려다. 단, 이 지점의 단골고객 등 일부 VIP에게만 태그 번호표가 지급된다. 고객의 동선을 연구해 디자인을 바꾸고 디지털 기기를 곳곳에 갖춘 점도 이 점포의 특징이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박소영 인턴기자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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