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월급쟁이 최고의 자리… 언제든지 내려올 준비해야

동아일보 입력 2010-10-01 03:00수정 2010-10-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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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부회장 3대 유형으로 분류해보니… #1.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LG그룹은 주력 계열사의 부회장을 각각 경질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일어난 ‘쏘울’과 ‘쏘렌토’ 리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정성은 기아차 부회장을 물러나게 했고 LG그룹은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남용 LG전자 부회장을 퇴진시켰다.

#2. 한라그룹은 지난달 28일 계열사 사장 2명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한라그룹은 1997년 부도가 나면서 부회장직을 없앴다가 13년 만에 부활시켰다. 박종철 한라그룹 홍보팀장은 “그룹 규모가 커지면서 부회장직을 신설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이는 한라그룹이 예전의 위상을 회복해가고 있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회장은 오너가 있는 대기업에서 오너의 친인척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올라갈 수 있는 사실상 가장 높은 직급이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이희범 STX그룹 회장 등 오너가 있는 대기업에도 ‘월급쟁이 회장’이 있기는 하지만 특이한 경우다. 이수빈 회장은 삼성그룹이 1993년 전자, 금융, 중화학 등의 소그룹으로 나누는 실험을 할 때 금융보험소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계속 회장을 맡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경영과 거리를 두면서 회장이 공석이었고 STX그룹은 전직 산업자원부 장관인 이 회장을 영입하면서 예우 차원에서 회장으로 모셔왔다.

○ 10대 그룹에서 3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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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한 그룹에도 수십 명에 이르지만 부회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4대 그룹만 보면 부회장이 삼성 5명, 현대차 14명, LG 4명, SK 6명이다. 현대차에 유독 부회장이 많은 것은 정몽구 회장의 인사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성과가 있을 경우 수시로 승진시키다 보니 부회장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다른 그룹에 비해 수명이 짧다. 지난해 1월 이후 물러난 부회장 5명 중 김동진 부회장을 제외한 4명은 부회장으로 승진 이후 1년 6개월이 안 돼 모두 퇴진했다. 현재 부회장 14명 중 11명이 2008년 1월 이후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0대 그룹으로 범위를 넓히면 롯데와 포스코에 각각 한 명 있고 GS그룹에 두 명이 있다. 롯데의 유일한 부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이고 GS그룹의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은 허창수 회장의 삼촌이다.

재계 순위 8∼10위인 현대중공업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한진그룹에는 부회장이 한 명도 없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말 신훈 부회장이 퇴진하면서, 한진그룹은 올해 초 김종선 정석기업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부회장이 공석 상태다.

○ 오너형, 실세형, CEO형

국내 대기업 부회장은 ‘오너형’과 ‘실세형’ ‘최고경영자(CEO)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너의 일가로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신동빈 부회장, 최재원 ㈜SK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신동빈 부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하고 있고 정의선 부회장은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실세형 부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나기 전까지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을 이끌었던 이학수 전 부회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강유식 LG그룹 부회장과 김창근 SK그룹 부회장 등도 실세형 부회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3명의 공통점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고 ‘장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학수 고문은 1997년 1월 회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이후 10년 넘게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강유식 부회장은 2002년 3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8년 넘게 현직을 지키고 있고 김창근 부회장도 2004년 3월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의 부회장 14명 중에서는 비서실장을 겸하면서 인사 업무를 관장하는 김용환 부회장이 ‘실세형’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너형과 실세형이 아닌 부회장은 대부분 ‘최고경영자형 부회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장으로서 좋은 실적을 보여 부회장으로 승진한 경우가 많다. 사실상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를 총괄하고 있는 최도석 삼성카드 부회장이 대표적인 CEO형이다. 최 부회장은 1997년부터 10년 이상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 그룹 살림을 맡아오다 지난해 1월 삼성카드로 옮겼다. 이형근 기아차, 박승하 현대제철, 김반석 LG화학,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등도 CEO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 부회장의 ‘명암’

부회장으로 승진한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권한이 오히려 줄어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회장이 되면서 등기이사에서 제외되는 경우에는 연봉도 대폭 줄어든다. 삼성그룹 부회장 5명 중 실질적으로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부회장은 김순택 최도석 부회장 등 2명이다. 이윤우 김징완 이상대 부회장은 대외활동 업무만 하고 있다.

정성은 부회장과 남용 부회장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실적이 나쁜 경우에는 언제든 물러날 수 있다. 한 대기업 전직 부회장은 “직장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지만 더 올라갈 수 없어 언제든 내려올 준비를 해야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대기업 부회장’ ::

오너가 있는 대기업에서 직장인이 올라갈 수 있는 사실상 가장 높은 자리. 그룹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로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지만 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그룹 내의 어떤 임직원보다 먼저 옷을 벗을 수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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