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궁 전도사’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사무실 한쪽에 미니 국궁장 설치
직원-외부 손님에 활 선물하기도
“순간 집중하는 國弓〓경영교과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동덕빌딩 집무실에서 국궁을 들고 활시위를 당기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국궁을 시작해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는 ‘국궁 마니아’가 됐다. 사진 제공 대성그룹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58)이 걸어온 길에선 ‘개인 김영훈’의 강한 자의식이 느껴진다. 시대의 첨단을 호흡하는 지식인, 그러나 결코 문약(文弱)하지 않은 승부사가 되고자 하는 욕망…. 한 달에 10여 권의 책을 읽고 2만 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가한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행정학과),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을 졸업한 수재이나 외모와 눈빛에서 풍기는 존재감은 누가 봐도 책상물림의 그것이 아니다. 개인 홈페이지(www.younghoonkim.com)를 운영하는 몇 안 되는 최고경영자(CEO)이며, 2세 경영인임에도 첫 직장으로 아버지의 회사가 아닌 씨티은행을 고집했다. ● 자타 공인 ‘국궁 마니아’
아마도 그가 추구하는 인간상이 ‘문무(文武) 겸비형 리더’인 듯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궁(國弓) 마니아’라는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의 전통 활인 국궁은 길이가 120∼130cm인 짧은 활이다. 생김새가 단순하고 소박하며 물소 뿔, 소 힘줄, 나무 등을 붙여 만들어 탄력이 뛰어나다.
김 회장은 “활은 내 에너지”라며 “집중력을 키워주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일 아침, 그리고 평소에도 활터를 찾아 하루 100여 발의 활을 쏜다. 집 뜰에 활터를 마련해 놨으며, 서울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기슭의 국궁장인 황학정(黃鶴亭)도 자주 찾는다.
그는 “오전 4시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국궁을 통해 활기를 얻는다”며 “145m 밖의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다 보면 온 정신이 모아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사무실 한편에도 ‘미니 국궁장’을 만들었다. “일을 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틈틈이 인조 말에 올라 활시위를 당긴다. 집무 중 활을 쏘면 회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잠시 동안 날려버릴 수 있다”고 했다. 직원들이나 외부 손님에게도 활을 선물하며 ‘국궁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국궁을 배운 지는 10년 정도 됐다. 어깨 통증으로 고생할 때 지인의 추천으로 시작했는데 6개월 정도 했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싹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실력은 이제 전문 궁사 못지않은 수준이다.
김 회장은 국궁에 대해 “일본의 무기가 칼, 중국의 무기가 창이라면 활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무기”라며 “한민족에게는 활쏘기의 DNA가 있다”고 말한다. 동이(東夷) 민족의 ‘이(夷)’자도 활(弓)을 든 사람을 나타내는 한자라는 설명이다. 과연 주몽, 양만춘, 이성계 등 한국사에는 신궁(神弓)들이 유독 많다. 그가 추구하는 인간형인 정조(正祖)나 이순신 장군도 국궁에 능했다.
● 신사업으로 제2의 도약 준비
정조는 활쏘기를 단순한 육체 훈련으로 보지 않고 거기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했다. 정조는 50발을 쏘다 49발을 과녁에 맞히면 마지막 한 발을 일부러 숲 속을 향해 쏘거나 과녁을 비켜 쏘았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신하들에게 정조는 “활쏘기는 군자의 경쟁이다. 사물을 모두 차지하는 것도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경영을 국궁에 비유한다. “국궁에 경영원리가 담겨 있다. 국궁은 제 경영의 뗄 수 없는 동반자이자 스승”이라는 설명이다.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고, 한 걸음 물러나 다시 점검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추진력을 내야 한다는 점이 그가 보는 국궁과 경영의 공통점이다.
활쏘기는 발 디딤, 몸가짐, 살 먹이기, 들어올리기, 밀며 당기기, 만작(滿酌·활을 최고로 당긴 상태), 발시(發矢), 잔신(殘身·화살은 몸을 떠났지만 마음은 떠나면 안 된다) 등 8단계로 이뤄진다. 김 회장은 이 중 특히 만작에 대해 “기업이 새 사업에 진출할 때 시장과 경쟁업체 동향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단계와 아주 비슷하다”며 “잘못된 화살이 과녁에 제대로 닿을 수 없는 것처럼 경영도 이 과정이 어긋나면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궁에서 만작이 가장 힘든 단계입니다. 그러나 만작이 완성되면 화살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과녁을 향해 날아갑니다.”
김 회장과 대성그룹이 최근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신사업은 신재생에너지와 문화콘텐츠다. 선대 회장 시절 대성그룹이 반도체사업 진출의 기회를 놓친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는 지금 신재생에너지와 문화콘텐츠 사업이 1980년대 반도체사업과 같은 도약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두 사업 중 현재 만작의 상태에 더 가까운 것은 신재생에너지 분야다. 몽골 울란바토르 시 일대 330만 m² 면적에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친환경 농장을 건설하는 ‘GEEP 프로젝트’는 그의 야심 찬 시도다. 지난해 완공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대성그룹은 이 사업 모델을 다른 에너지 빈곤국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최초의 타워형 태양열 발전시스템 건설사업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올해 착공한다. 신기술 개발과 운영 노하우를 축적해 2020년 세계 태양열발전시장의 1%를 차지한다는 목표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올해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김영훈 회장은 ―1952년 대구 출생 ―1975년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졸업 ―1981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졸업 ―1981∼1983년 씨티은행 어시스턴트 매니저 ―1987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 ―1988∼1993년 대성산업㈜ 상무, 그룹 기획조정실장 ―1997∼2000년 대성그룹 기획조정실장 사장 ―2000년∼현재 대구도시가스㈜, 경북도시가스㈜ 대표이사 회장 ―2005년∼현재 세계에너지협의회 (WEC)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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