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방일석 올림푸스한국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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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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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패션… 튀는 경영… 사장님이 좋아요”

올림푸스한국 방일석 사장이 최근 내놓은 하이브리드 카메라 ‘펜(PEN)’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에서 마케팅 전문가를 거쳐 최고경영자(CEO)가 된 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남다른 패션 감각이다. 그는 “21세기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감성”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올림푸스한국 방일석 사장이 최근 내놓은 하이브리드 카메라 ‘펜(PEN)’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에서 마케팅 전문가를 거쳐 최고경영자(CEO)가 된 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남다른 패션 감각이다. 그는 “21세기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감성”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시작은 ‘미스터 반도체’ 시절부터였다. 약 20년 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당시 동료들에게 최우선은 ‘일’이었다. 작업복으로 주어진 공장 점퍼는 그저 추울 때 걸치는 도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수선실로 달려갔다. 팔꿈치 부분이 늘어나거나 펑퍼짐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엔지니어 시절부터 ‘피트감’을 중시했던 셈. 다들 똑같이 입는 점퍼를 혼자서 줄여 입은 걸 보고 동료들은 ‘미스터 반도체’라는 별명을 붙였다.

미스터 반도체와 만난 24일 오후 서울은 하늘에 먹구름이 낀 우중충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런 날은 좀 밝게 입어줘야 해요”라며 총천연색 옷을 입었다. 파란색 베르사체 재킷에 흰 피케셔츠와 흰 바지, 구찌 흰색 로퍼….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후에도 감각은 여전했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직접 아이디어를 냈고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 집에서 가져왔다. 올림푸스한국의 방일석 사장(47) 이야기다.

○ ‘튀는 CEO’

“패션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 아닐까요. 내가 어떤 모습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스타일과 패션에 대한 그의 끼는 선천적이었다. 1970년대 중반 중·고등학교를 다닌 ‘교복세대’였던 그는 어릴 적부터 피트감을 살리기 위해 모자를 뺀 나머지 상의, 하의를 죄다 줄여 입고 다녔다. 또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고 싶어 이태원과 청계천에 있는 수제화집을 찾아 다녔다.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나팔바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공부나 하라는 핀잔을 들을 법하지만 그는 “오히려 부모님이 ‘자기 자신을 잘 가꾸는 사람이 공부도 잘한다’며 격려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제복 리폼’ 역사는 군인 시절에도 계속됐다. 육군 장교였던 그는 보급품으로 나온 군복 대신 직접 육군본부에 가서 맞춤형 군복을 주문했다. “사병들도 있는데 어떻게 무릎 튀어나온 군복을 입어요”라며 말로는 ‘장교의 위엄’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자기만족 때문이었다. 그는 “50분 행군하고 10분 쉴 때 땅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혹시나 옷이 구겨지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사병들이 볼까 봐 행군 내내 땅에 앉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패션은 그에게 단순한 허영심이나 과시 이상으로 비친다. 특히 2000년 올림푸스한국 사장으로 취임한 후부터 그는 패션을 CEO의 전략 중 하나로 꼽았다. 나름의 법칙도 세웠다.

정장은 차갑고 이성적으로, 넥타이는 감성적으로…. 갈색 감색 등 다소 어두운 톤이지만 흰색 줄무늬 ‘스트라이프’ 계통의 정장을 입는다. “CEO의 카리스마를 나타내기 위해서”란다. 반대로 넥타이는 빨간색 와인색 등 섹시함을 강조한 원색 계통을 주로 맨다. 주말용 캐주얼은 파스텔 톤의 은은한 느낌을 주는 의상을 즐겨 입는다. 40대의 중년인 그의 패션 감각을 유지하는 데는 디자이너 출신의 아내도 한몫한다. 하지만 그는 “CEO가 된 이후 내 옷은 내가 챙긴다”고 말했다. 두 아이의 옷도 직접 사서 입힐 정도다.

○ 패션을 경영하고 감성을 팔기까지

그에게 패션은 일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튀는 패션이 업무상 바이어들에게 그를 돋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작용한다. 패션 때문에 일이 잘 풀린 적도 있다.

5년 전 올림푸스이미징 아시아중동 총괄사장 시절 대만 바이어 한 명이 그의 튀는 패션을 보고 넥타이를 선물했다. 6개월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방 사장은 선물로 받은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대만 바이어는 “대단히 센스가 있다”고 하더니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10년 전 40억 원의 매출을 내던 올림푸스한국은 현재 1350억 원대를 돌파하며 30배 가까운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내놓은 하이브리드 카메라 ‘펜(PEN)’ 시리즈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직원들에게도 ‘패션 경영’을 강조한다. 패션에 민감하고 유행에 뒤지지 않아야 새로운 감각을 제품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경영철학에서다. 방 사장은 “진정한 컨버전스(융합)를 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서로 모순된 ‘디버전스’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잘 융합시키는 능력을 기르라는 뜻이다. 패션 감각은 그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가 최근 직원들에게 직접 디자인한 정장을 선물한 것과 올해 초 지리산 시무식 당시 자신의 스타일인 원색 컬러 등산복을 나눠 준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다.

최근 그는 ‘젠틀회’라는 사조직 활동을 한다. 패션에 관심 많은 업계 CEO들과 친분 있는 디자이너 등 10여 명이 모여 서로의 패션에 대해 품평을 하고 이를 통해 경영 능력을 키우는 것이 모임의 목표다. 이 모임의 최근 도전 과제는 ‘속옷 스타일리시하게 입기’. 그의 감각적인 경영은 어디까지일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조직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감성’입니다. 변화와 혁신은 공식처럼 억지로 무언가에 대입해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침에 옷을 바꿔 입는 것처럼 매일매일 조금씩 자신을 바꿔 나가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방일석 사장은 ▼
― 1963년 출생
― 1986년 중앙대 전기공학과 졸업
― 1988년 삼성전자 입사
― 1993∼2000년 삼성전자 일본 주재원 근무
― 2000년 올림푸스한국 설립, 대표이사 취임
― 2004년 올림푸스이미징주식회사 (OIMC) 등기이사 선임, 아시아·중동 총괄 사장
― 2005년 ‘한국을 빛낸 CEO’ 대상 수상
― 2008년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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