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반대의견 2無… 권한-보수 2多 ‘꽃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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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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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수기’ 전락 사외이사
누가 그 자리에 가나
사원의 형-부친 등 ‘특수 관계’
‘힘있는 기관’ 출신-교수 많아
일부는 2개회사 겹치기 등록

어떤 대우 받나
이사회 年10여차례 참석하고
2600만∼5300만원 보수 챙겨
별도 사무실-거마비 받기도

서비스 분야가 핵심인 모 그룹 계열사는 사외이사 4명을 모두 ‘힘 있는 기관’ 고위직 출신으로 채웠다. 서울지방국세청장, 감사원 사무총장, 수원지방검찰청장,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들의 전직(前職)이다.

이 회사 외에도 이른바 ‘권력기관’ 간부 출신을 대기업 사외이사로 두는 기업이 적지 않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주주나 경영진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외이사도 있다. 이에 따라 “경영 전문성을 보완한다는 취지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회사가 올린 안건이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주된 이유가 사외이사들의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 ‘반대’ 안하나 못하나

‘거수기’라는 비판에 대해 현직 사외이사들은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찬성했다고 해명한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5차례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에 모두 참석해 19개 안건에 모두 찬성표를 던진 한 사외이사는 “삼성전자 사람들이 워낙 세밀하게 검토를 하고 안건을 올린다”며 “꼬투리를 잡아 반대할까 해도 반대할 만한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LG화학의 한 사외이사는 “구체적 사항에 대해 아무래도 회사 쪽에 정보가 있고, 경영 책임은 회사가 지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 대해 질문을 해볼 순 있지만 나가려는 방향에 반대하는 게 반드시 바람직하진 않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현대중공업 사외이사인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들이 안건을 만드는 단계에 개입해서 회사 측의 설명을 미리 듣고 안건이 제시되기 때문에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직 사외이사인 A 씨는 “사외이사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누구의 입김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표를 던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해 상당수 기업의 이사회가 자유롭게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분위기임을 에둘러 표현했다.

○ ‘권력기관’ 출신 많아

해당 회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반대하기가 쉽지 않은 사외이사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대자동차의 한 사외이사는 이 회사 B 사장의 형이다. 이 사외이사는 지난해 1∼9월 7차례 열린 이사회에 모두 참석해 27개 안건에 전부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내가 찬성표를 던진 것과 동생이 현대차에 있는 것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또 다른 사외이사인 C 씨도 아들이 현대차 직원이다. C 씨도 이사회에 전부 참석해 모두 찬성했다.

‘사외’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한 사외이사도 있다. ㈜효성의 한 사외이사는 효성그룹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부회장까지 오른 뒤 퇴직했다. 그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고향 선배로 조 회장과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조사 대상인 30개 대기업의 사외이사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모두 157명이었다. 출신 직업별로 보면 교수가 60명으로 가장 많았고 기업인(29명)과 금융인(16명) 순이었다. 교수와 금융인은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로 기업에서 선호한다. 금융계 인사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건설 등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기업에 채권 금융기관 몫의 사외이사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9명)과 법원(8명), 국세청(7명), 공정위(2명) 등 ‘권력기관’ 출신도 많았다. 권력기관 간부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과 관련해 “대기업들이 이들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사외이사는 “50대 기업에 드는 대기업이라면 로비스트로는 다른 사람들을 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겹치기’ 사외이사도 많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아자동차와 하이닉스에 사외이사로 등록돼 있으며 박오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대한항공 사외이사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등 눈길을 끄는 사람들도 있다.

○ ‘최고의 부업’

금감원 공시자료를 통해 조사 대상 기업 사외이사들의 보수를 알아본 결과 2600만 원에서 5300만 원까지 기업별로 다양했다. 삼성물산 사외이사 5명은 지난해 1∼9월 이사회에 총 8차례 참석해 평균 2600만 원을 받았다. 이에 비해 SK텔레콤은 삼성물산과 비슷하게 이사회가 9차례 열렸지만 사외이사 6명의 평균 보수는 삼성물산의 두 배가 넘는 5300만 원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현대중공업(3900만 원) 현대차(3600만 원) 기아차(3000만 원) 등 자동차·중공업 분야보다는 SK텔레콤 삼성전자(5000만 원) KT(4500만 원) LG디스플레이(4400만 원) 등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의 사외이사 보수가 더 후한 편이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거마비’ 조로 별도의 현금을 지급하거나, 따로 사무실을 지원하는 등 숨겨진 혜택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권한은 많고 책임은 없는 데다 보수는 많아서 대학 교수 사이에서 사외이사는 ‘최고의 부업(副業)’으로 통한다. 대기업 두 곳에서 사외이사를 하는 한 대학 교수는 “사외이사 보수가 대학에서 받는 봉급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사외이사가 사회 명망가들의 ‘부수입’을 올리는 수단 내지는 이력을 추가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심현경 인턴기자 부산대 행정학과 3학년

▼“주주이익 대표하는 자리… 소신껏 의견 냈을 뿐”
작년 이사회서 반대표 던진 SK에너지 남대우 사외이사▼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이 아니라 주주를 대표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 회사가 길게 잘되고 주주와 종업원 등 이해 당사자에게 이롭게 하려면 사외이사가 소신 있게 의견을 내야 합니다.”

지난해 7월 열린 SK에너지 이사회에서 이 회사의 윤활유 사업부를 분할해 SK루브리컨츠를 설립하는 안에 반대한 남대우 SK에너지 사외이사(72·사진)는 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반대표는 지난해 1∼9월 열린 SK에너지 이사회 중에서 유일한 것이었다. 남 이사는 당시 반대 의견을 낸 이유에 대해 “솔직히 전문적인 생산 공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그러나 상장기업인 SK에너지가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회사를 만드는 것이 투명경영이라는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에도 SK에너지와 인천정유의 합병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사업적 필요성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기업공개를 통해 시장 원리에 따라 주식매수가액을 정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두 차례 열린 SK에너지 이사회는 당시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컨소시엄 출자 요청 건에 대해 참여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사내 이사들은 찬성 의견이었지만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 다만 이때는 의결 안건이 아니기 때문에 불참 결정이 공시로 남지는 않았다.

남 이사는 “사외이사는 혼자 아니냐. 회사 측에서 여러 사람이 정교하게 만든 자료에 대해 몇 마디 말로만 반대할 수 있겠나”라며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나름의 논리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SK에너지의 이사회는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솔직히 어디에서나 남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지 않냐”고 했다. 그는 “(사외이사가 되면)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잘 알 것”이라며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지 알고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 이사는 재무부 출자관리과장을 거쳐 신용보증기금 전무, 신보창업투자㈜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는 SK㈜와 소버린자산운용 양쪽의 추천을 받아 SK㈜의 사외이사가 된 뒤 SK에너지로 옮겼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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