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건 17일 오후 9시 53분 인터넷에 올라온 단 한 문장의 오보(誤報)였다. 순식간에 양 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가 됐고 양 씨의 집에는 울며불며 전화하는 지인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양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 빨리 끓고 빨리 식는 인터넷
이날 밤에 벌어진 이 해프닝은 인터넷의 ‘빠른 의사전달 속도’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란 걸 보여준다. 발단은 한 언론사가 NHN의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린 오보였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번졌고 결국 해당 언론사가 오후 11시 29분 정정보도를 내면서 소동은 약 1시간 30분 만에 ‘공식적으로’ 진화됐다.
얼핏 보면 단순한 해프닝 같다. 하지만 사건이 유통되는 속도가 문제였다. 본보는 SK커뮤니케이션즈의 포털사이트 네이트닷컴에 의뢰해 첫 보도가 나온 9시 53분부터 1시간 뒤인 10시 53분까지 1시간 동안 ‘양미경’이란 키워드에 대한 사람들의 검색어 입력 빈도를 살폈다. 그랬더니 10시 18∼26분의 단 8분 동안에 검색창에 ‘양미경’을 입력한 사람의 93%가 몰려 있었다. 27분 이후로는 단 3%만 ‘양미경’을 검색했다.
발단이 된 네이버에서 네이트로 입소문이 퍼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점을 감안하면 뉴스는 소비 직후 순식간에 관심이 끓어올랐다 급격히 관심이 식어버린 셈이다. 정정보도가 나왔을 땐 이미 누구도 이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최근에는 새로운 기술이 이런 일을 계속 부추긴다. 7일 미국 인터넷기업 구글이 선보인 ‘실시간 검색’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처음 선보인 실시간 검색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검색 결과가 초 단위로 계속 바뀌면서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강원도 스키장’을 검색창에 넣으면 ‘강원도 대설주의보’라거나 ‘지금 스키장에 눈이 고르게 쌓였다’는 식의 뉴스나 트위터 내용이 검색된다.
이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마침 미국에서는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의 외도가 화제였다. 실시간 검색 서비스에서도 누리꾼들의 소문이 여과 없이 속속 등장했다. 검색어로 ‘타이거 우즈’를 입력하자 ‘5번째 여인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나왔고, 이는 6번째와 7번째로 확대됐다. 이는 순식간에 10명, 20명이 넘는다는 ‘설’로 증폭됐지만 사실확인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당사자인 타이거 우즈의 명예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화제는 그저 실시간에 생겼다 사라질 뿐이었다.
○ 스테디셀러가 사라진다
실시간 이슈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런 ‘속도의 문화’는 문화를 소비하는 속도도 변화시켰다. 음악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락’이라는 음악판매 사이트를 운영하는 KT뮤직은 올해 7월부터 일일 음악 판매량과 실시간 음악 감상량을 합쳐 ‘1일 순위’를 집계한다. 그 결과 7월 이후 2주(14일) 이상 연속해서 1위를 한 가수는 브라운아이드걸스(21일)와 지드래곤(20일) 등 단 둘뿐이었다. 주간 단위로 평균을 내도 역시 이 둘만 3주간 1위였다. 인기곡 하나로 3주를 버티기 힘든 셈이다.
이런 식의 빠른 소비는 스테디셀러도 사라지게 했다. 온라인 음악 구매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싸이월드의 연간 배경음악 구입 통계를 살펴봤더니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최근 5년 동안 매년 가장 많이 팔린 인기곡 300곡 가운데 발매 1년 이후에도 계속 판매된 ‘스테디셀러’의 비중은 해마다 급감했다. 싸이월드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5년에는 300곡 가운데 104곡이 스테디셀러였고 2006년에도 101곡에 달했다. 그런데 2007년에는 88곡, 2008년에는 39곡으로 줄더니 올해는 12월 20일까지 300곡 가운데 단 10곡만이 스테디셀러였다.
그래서 최근 주목받는 게 실시간 차트다. 이는 한 시간 단위로 인기도를 체크하는 순위 차트다. 문제는 수백∼수천 명의 팬클럽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특정 시간에 함께 사는 편법을 동원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1위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음반사들은 이런 결과를 ‘실시간 차트 1위 데뷔’라고 포장한다. 문화상품은 점점 쓰고 버리는 소비재가 되고 있다. KT뮤직의 최윤선 홍보팀장은 “음악을 소비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음악의 인기를 평가하는 기준이 월간 순위, 주간 순위에서 1일 순위와 실시간 순위로 빠르게 이동했다”고 말했다.
○ 실시간으로 함께 즐거운 인터넷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리얼타임 기술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험도 만들어 냈다. 최근에는 시청자들이 TV와 컴퓨터를 함께 켜고 방송사 게시판이나 방송프로그램 커뮤니티 등에 모여 방송 중인 프로그램에 대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나눈다.
22일 방영됐던 MBC 인기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회가 진행되는 동안 드라마 게시판에선 시청자들이 “비담이 우니까 나도 울 것 같다”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계속 쏟아내며 서로 대화를 나눴다.
가전업체들은 아예 이런 사용자들의 변화된 행동방식에 맞춰 ‘소셜TV’라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TV를 보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인터넷 친구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게임기인 엑스박스 등에 이런 기능을 넣어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서로 의견을 나누게 했다.
최근에는 단순한 의견이 아닌 동영상도 실시간으로 교환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휴대전화의 동영상 카메라로 촬영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바로 생방송으로 올릴 수 있는 ‘유스트림TV(ustream.tv)’가 대표적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손자의 생일파티를 할아버지 할머니가 컴퓨터 앞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보듯 볼 수 있는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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