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섹션 피플]근속 40년 노영인 동양메이저-시멘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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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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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장수 비결? 정면돌파하는 거야!
‘샐러리맨의 꿈’ 회장비서에서 부회장으로
상사의견 존중… 꿈을 갖고 살아야

노영인 동양메이저·동양시멘트 부회장은 “‘산이 막히면 온 힘을 모아 터널을 뚫고, 최대한 빠르게 통과해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다”고 회고한다. 사진 제공 동양그룹
노영인 동양메이저·동양시멘트 부회장은 “‘산이 막히면 온 힘을 모아 터널을 뚫고, 최대한 빠르게 통과해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다”고 회고한다. 사진 제공 동양그룹
24세 청춘에 입사해 64세가 됐다. 처음 입사할 땐 ‘회장님 비서’였지만 지금은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노영인 동양메이저·동양시멘트 대표이사 부회장(64)은 동양그룹과 40년을 함께했고 ‘대표이사’ 직함으로 13년 일했다. 동양그룹 임직원들은 7일 오후 6시 경기 안성시 웨스트파인GC 클럽하우스에서 노 부회장의 근속 40년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졌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이혜경 부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대표이사 및 임원이 참석했다.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보는 장면이 아닐까.

노 부회장은 1969년 12월 동양시멘트 공채로 입사해 1979년 구매부장, 1980년 자재·영업·수출 담당 상무가 됐다. 35세에 직장의 ‘별’인 임원이 됐다. 당시 부장들의 평균 나이는 50세 안팎이었다. 이로부터 9년 후에는 영업·수출·레미콘사업 담당 전무, 51세에 동양생명보험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06년에는 동양시멘트·동양메이저 부회장에까지 올랐다.

그는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고 술을 남들보다 잘 마시지도 않는다. 인맥을 형성하려고 모임을 만들 만큼 적극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남들보다 승진도 빠르고 대표이사도 오래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노 부회장은 “‘산이 막히면 온 힘을 모아 터널을 뚫고, 최대한 빠르게 통과하라’는 평소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고 말한다. 해결할 문제나 어려움이 있을 때 정면돌파했지 에둘러 간 적이 없다는 의미다.

30대 초반 자재부 구매담당 과장일 때 자재를 수입하면서 한 푼이라도 절세하기 위해 관세법을 공부하고 국제무역사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관세청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면서 면세가 될 수 있는지, 분할납부가 가능한지를 따지고 묻고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상당한 금액을 절세했는데, 빠른 승진은 이런 실적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동양시멘트 대표이사 재직 당시 경기침체와 대우그룹 채권 등으로 회사가 휘청거릴 때 시멘트 수출, 1300억 원대 외자유치로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슬럼프도 있었다. 노 부회장은 “슬럼프가 10년마다 한 번씩은 찾아온 것 같다”며 “직장이 (동양시멘트에서 동양생명보험으로) 달라지면서 겪는 어려움도 있었고 은행과 정부 관계 등에서 비애를 느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입사 초기 비서직이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는 그는 그때마다 아내가 큰 힘이 돼 줬다고 말한다. “아내는 내 인생 최고의 카운슬러였다”며 “내가 겪은 위기의 절반은 아내 덕에 넘었다”고 말했다. ‘40년 근속’ 축하행사에 노 부회장은 아내에게 “38년간 돌봐줘 고맙다”며 영상편지를 띄워 애정을 표현했다.

외국계 금융회사 임원, 변호사로 각각 일하는 두 아들에게 해주는 직장생활 조언 1호는 ‘윗사람의 의견을 존중해라. 어떤 지시도 이유가 있다’는 것이란다. 그는 “다른 의견이 있어도 개인적으로 얘기해야지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강하게 반박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귀띔한다. 노 부회장은 “자기주장을 갖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성실한 후배가 예쁘다”며 “어떤 경우든 꿈을 가지고 살라”고 당부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기 때문이란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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