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비 넘겼나 했더니…” 이번엔 동유럽發 ‘먹구름’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1달러=1468원18일 동유럽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과 미국 자동차업계 파산 위험, 북한 미사일 발사 우려 등 국내외 악재가 서울 금융시장을 덮쳤다. 이날 코스피가 사흘째 하락하고 달러당 원화 환율이 7거래일 연속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훈구 기자
1달러=1468원
18일 동유럽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과 미국 자동차업계 파산 위험, 북한 미사일 발사 우려 등 국내외 악재가 서울 금융시장을 덮쳤다. 이날 코스피가 사흘째 하락하고 달러당 원화 환율이 7거래일 연속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훈구 기자
동유럽 국가 부도설→서유럽 은행 부실→세계금융 요동

원화가치 급락-증시 혼조… 한국 ‘3월 위기설’ 다시 고개

한동안 평온을 되찾는 듯했던 세계 금융시장에 다시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홍역을 치렀던 지난해 9, 10월의 악몽이 재현될 분위기다.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기업의 파산 위험이 높아지면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고, 동유럽 일부 국가는 국가부도설에 휘말려 있다. 국내에서도 금융회사들의 외화유동성 문제가 부각되면서 원화가치가 연일 급락하고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등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말 각국의 유동성 공급으로 신용경색이 풀릴 기미가 보이자 일부 전문가는 “금융 부문의 위기는 일단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며 안도했다. 주요국 정부는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보고 실물경기의 침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이 섣부른 낙관론이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 새로운 폭탄, 동유럽발(發) 악재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은 국내외에 겹겹이 쌓인 악재가 상승작용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증폭되는 양상이다. 해외발 위기의 시발점은 동유럽이다.

외환사정이 좋지 않은 동유럽 국가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헝가리 폴란드 등의 통화가치는 올 들어 많게는 15∼20%씩 하락했다. 이들 국가의 주요국 은행 차입금 규모는 1조7000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와중에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이 17일(현지 시간) “동유럽 경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들에 돈을 빌려준 서유럽 은행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위기감이 커졌다. 동유럽의 한두 국가가 부도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럽 금융시장 전체가 영향권에 들어간다면 세계 경제도 연쇄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도 GM과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회사들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시장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두 회사는 17일 30조 원에 이르는 추가자금 지원을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미국 정부는 두 회사의 파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이처럼 악재가 겹치면서 이날 미국과 유럽의 주가는 폭락하고 안전자산인 금값이 오르는 등 시장에선 지난해 가을의 위기 현상이 그대로 되풀이됐다.

○ ‘셀 코리아’ 악몽 되살아나나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은 한국에도 큰 타격이 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외화조달 여건이 악화되면서 환율이 빠른 속도로 오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은행(외국계 제외)의 외채는 약 280억 달러로 이 중 약 절반이 1분기(1∼3월)에 만기가 몰려 있다.

이를 막으려면 추가로 외화를 차입하거나 만기연장(롤오버)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동유럽발 위기가 악화되면 국제시장의 자금경색으로 외화조달 여건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환율 급등은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며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토러스투자증권 이경수 연구원은 “동유럽 국가에서 부도가 발생하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 증시에 대한 위험 회피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에 유입된 일본계 자금이 3월 결산기를 맞아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이른바 ‘3월 위기설’도 시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 패닉 없지만 V자형 회복 어려울 듯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은 “당장의 위기는 모면한 것 아니냐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며 “글로벌 경제위기가 치유 단계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식이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최근 국제공조의 실패로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고, 각국의 경기부양책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골드만삭스는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 등을 통해 핵심 산업을 보호하거나, 다른 나라의 재정부양책에 의존하려는 형태의 보호주의 움직임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적어도 작년 9, 10월처럼 ‘기능 마비’ 상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총력전을 펴고 있어 최악의 상황이 닥칠 가능성은 적지만 정부가 안전판 확보에 실패하면 경제 회복속도는 더 둔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