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Driven’]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X’

  • 입력 2008년 10월 23일 02시 59분


2000cc에서 맛보는 동급 최강 드리프트

4륜구동의 진화, 그 끝을 보라

10세대 걸친 진화 완성…극한이 즐거운 완벽 드라이빙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X’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1년에 70∼80종류의 신차(新車)를 접하기 때문에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정도의 쇼킹한 차가 아니고서는 웬만해서는 설렘이 찾아오지 않는다. 힘든 테스트를 하고 시승기도 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다소 사무적으로 차를 대하곤 한다.

배부른 소리라고?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시승차를 받고 측정장비를 주렁주렁 붙인 뒤 밤늦게 최고속과 가속력 측정, 고속주행 안정성을 테스트하고 다음 날은 서킷이나 한적한 국도를 찾아 동영상 촬영까지 하다보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그러나 랜서 에볼루션은 그런 수고가 오히려 기다려졌다. 왜일까.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현실적인 슈퍼카

랜서 에볼루션은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을 통해 명성이 높아진 모델이다. 밋밋해서 하품이 나올듯한 일반 준중형 세단인 랜서를 바탕으로 꾸며진 랠리버전이다. 모델명 뒤에 로마숫자가 따라오는데 현재는 10세대 모델이어서 ‘X’가 붙었다.

작은 차체와 2.0L 터보엔진, 4륜구동이 랜서 에볼루션의 상징이다. 최고출력은 295마력. 3.5L 엔진과 300마력 이상 자동차가 즐비한데 배기량이나 최고출력 모두 내세울 게 없다. 최고속도도 시속 240km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랜서 에볼루션은 수치로 설명되는 차는 아니다. 직접 측정한 제로백은 5초 중반. 빠르기는 하지만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직선도로를 달릴 때면 메르세데스벤츠 C63AMG 같은 고출력 세단에 차로를 양보해야 한다.

그런데 랜서 에볼루션은 운전자를 흥분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바로 운전대를 돌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쓰비시가 10세대에 걸쳐 친화시켜 온 첨단 4륜구동이 일반 운전자의 능력을 훌쩍 높여준다. 그래서 ‘공도(公道)의 슈퍼카’라는 별명이 붙었다.

○ 첨단 4륜구동의 매력

모델명에 붙은 에볼루션(진화)이라는 단어는 목표를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왔음을 뜻한다. 10세대나 진화해왔으니 기술이 농익을 정도가 됐다. 랜서 에볼루션 4륜구동시스템의 이름은 S-AWC로 ‘Super All Wheel Control(슈퍼 올 휠 컨트롤)’의 약자다.

구동력을 4개 바퀴에 자유자재로 배분하고 차체 자세제어장치 및 브레이크를 통합제어하는 이 시스템은 일반적인 주행부터 급회전까지 광범위한 주행상황에서 운전자의 요구를 끝까지 따르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극한상황에서도 안정적인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커브길을 빠르게 달리며 운전대를 돌려보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분명히 원심력으로 미끄러져야 할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돌아나간다. 좌우로 급격하게 운전대를 움직이는 슬랄롬 상황에서도 차의 뒷부분이 스르륵 흐르는 듯하지만 스핀으로 연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세가 잡혀나간다.

주행 중 차를 일부러 미끄러트려 게걸음 치듯이 움직이는 드리프트 주행도 일반 후륜구동 스포츠카에 비해 너무 쉽다. 누가 밖에서 보면 프로드라이버가 운전한다고 여길 것 같다. 차가 운전자의 능력을 훌쩍 올려주는 셈이다. 물론 이 같은 능력은 닛산 ‘GT-R’에 들어간 것으로도 유명한 던롭 ‘SP600 DSST’ 타이어가 뒷받침한다.

○ 준비된 레이스카

랜서 에볼루션과 함께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 들어갔다. 일반타이어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접지력을 내는 슬릭타이어를 끼운 2.0L 경기용 차량의 스피드웨이 랩타임은 보통 1분13초 안팎이다.

아마추어 레이스에 출전 중인 기자가 랜서 에볼루션으로 낸 기록은 1분17초. 프로 레이서가 운전했다면 1분15초 정도로 예상된다. 타이어만 슬릭타입으로 바꾸면 경기용 차량과 같은 1분13초 정도를 기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랜서 에볼루션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보인다. 랜서 에볼루션은 자동화된 수동변속기로 불리는 TC-SST 6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가 프로 드라이버 수준의 변속 스피드를 보여주는 대신 내구성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서킷을 5바퀴 정도 돌자 변속기가 과열됐다는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보호모드로 들어가 제대로 변속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겠지만 튜닝을 통해 350∼400마력 정도로 출력을 높일 경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드코어 운전자들은 수동변속기가 그리울 듯하다.

○ 왜 이 차에 열광하나

우렁찬 엔진음은 스포츠카이니 그렇다 쳐도 바람소리, 타이어 소음이 상당하다. 시속 120㎞만 돼도 정신이 산만해질 정도다. 디자인도 얼핏 보면 일반 준중형 세단이다. 연료소비효율은 슈퍼카에 버금간다. 스포티하게 운전하면 L당 2∼3㎞ 정도. 시속 100㎞로 정속주행해도 L당 10㎞ 수준이다. 가격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자동차마니아들의 눈에 랜서 에볼루션은 달라 보인다. 브렘보의 4피스톤 브레이크와 빌스타인 쇼크업소버, 아이바크 스프링, 대형 리어스포일러와 디퓨저, 앞 범퍼 밑으로 보이는 대형 인터쿨러, 보닛 위에 뚫린 에어덕트, BBS 경량휠. 마니아에게 인기 높은 아이템들이다.

또 운전대를 잡으면 전투력이 넘치는 차의 움직임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랠리 드라이버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드리프트 컨트롤이 되고 뻥 뚫린 고속도로만 아니라면 슈퍼카에도 쉽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노면이 불규칙하거나 비포장인 길에서는 절대 강자다.

한마디로 정말 재미있는 장난감이다.

▶dongA.com에 동영상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석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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