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쓰고… 슬슬 놀고…‘배부른’ 공기업 노사

  • 입력 2008년 8월 5일 02시 59분


■ 감사원, 6곳 21명 수사의뢰… 유형별로 살펴보니

《공기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공기업의 비도덕적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법에 따라 업무를 거의 독점하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필요 없는 환경에 있음에도 임금인상이나 복리후생 확대를 위해서는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른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감사원은 올해 상반기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를 1단계 31곳과 2단계 70곳으로 나눠 총 101곳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공공기관은 23곳에 불과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개혁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들의 ‘도덕적 해이’는 여전했다. 공금 횡령, 비상장 주식 취득, 임금 편법 인상, 호화 경비 집행, 무단결근 후 해외여행 등 그 수법은 다양했다. 직무와 관련한 부정부패 혐의로 감사원은 6개 공공기관의 21명을 적발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①펑펑쓰는 임원… 내부 감시시스템 허술

법인카드로 가족휴가, 경조사비 147회 사용

공기업 임직원들은 부여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했다. 신용보증기금의 한 직원은 보증 대상 업체로부터 식사와 골프 접대를 받고 비상장 주식 5000만 원어치를 받았다가 적발됐다.

대한석탄공사의 간부들은 부도난 건설업체에 1800억 원을 특혜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석탄공사 직원의 퇴직금을 중간 정산한다는 허위 서류까지 꾸며 1100억 원을 차입한 뒤 해당 건설사에 빌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예탁결제원 직원은 신규 채용 때 성적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신의 직장’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았는지 면접점수를 조작해 합격권에 있던 5명 대신 순위 밖 5명을 합격시켰다.

내부 감시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수출보험공사 직원 중에는 수출보증업무를 하면서 편의를 제공하고 해당 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취득해 이득을 봤지만 감사원 적발 때는 이미 시효가 만료돼 처벌하지 못했다.

공기업 내부의 비리를 감시해야 할 감사가 나서서 횡령을 한 사례도 적발됐다.

한국공항공사 감사인 K 씨는 공항공사 감사 재직 기간인 2005∼2008년 법인카드를 이용해 고향 지역 주민의 자녀 결혼식에 화환을 보내는 등 147차례에 걸쳐 각종 경조사에 화환비로 1770만 원을 사용했다. 식사 비용과 가족 휴가 비용을 합쳐 2800만 원을 업무추진비 등으로 처리했다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②편법쓰는 회사… 감사원 지적해도 묵살

수당을 기본급에 넣고 다시 수당 신설해 지급

대부분의 공기업이 경영평가 성과급을 평균임금에 산정해 퇴직금을 과다 지급하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대법원 판례나 노동부 질의를 통해 계산 방식을 명확히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각종 보험료 산정 때는 성과급을 빼고 계산해 보험료는 낮추는 치밀함을 보였다.

정부가 정한 임금 가이드라인은 무용지물이었다. 2005∼2007년 임금인상 허용 범위는 2% 안팎이었지만 공기업들은 각종 수당을 통해 실질 인상률을 8%까지 높이기도 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시간외근로수당은 임금을 편법 지원하는 통로였다.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는 급여성 경비를 지급할 수 없음에도 경로효친비나 문화체육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지급했다.

연말에 집행해야 할 인건비 예산이 남으면 이를 전체 직원이 특별 시간외근무를 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나눠 가졌다.

통근비 같은 수당을 미리 기본급에 포함시킨 후 교통보조비 등을 신설해 이중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많았다.

감사원이 몇 차례 감사를 통해 지적을 해도 노사 합의라는 이유로 시정을 하지 않는 공기업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증권예탁결제원은 대학생 자녀 학자금의 지원방식을 무상지원에서 대여형식으로 바꾸라는 지적을 감사원으로부터 2차례 받고도 고치지 않다가 다시 적발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증권예탁결제원은 수수료 수입으로 자체 예산을 마련하는 곳이어서 임금 편법 지원 개선이 특히 힘든 곳”이라고 말했다.

피복비 지원도 자주 적발되지만 고치지 않은 공기업이 많았다. 근무복을 착용하는 직원에게 혜택이 가도록 만든 제도지만 전 직원에게 의류 상품권을 나눠주며 사실상 급여 형태로 지급했다.

③ ‘놀면서 챙기기’… 노사간에 이면 합의

집 있어도 무주택 자금, 경영성과 부풀리기도

각종 편법 지원 뒤에는 노사 이면 합의가 있다는 것이 감사원의 분석이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해 직원들의 개인연금을 지원하는 사례를 적발하면 직원 신용협동조합에 출자하는 형식을 만들어 지원하는 등 편법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토지공사는 4년 동안 273억 원을 조합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급여를 보조했다.

감사원이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 무상 지원을 금지하고 있지만 수많은 공기업이 지적을 받고서도 개선하지 않고 있다. 무주택자에게 임차보증금을 지원하는 제도도 사실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대여사업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장에 감사를 나가 보면 노사 합의를 내세우며 복지후생제도를 마음대로 만드는 곳이 많다”며 “공기업의 노조가 뼈를 깎는 반성을 하지 않는 한 편법 지원 문제는 고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금과 대우가 좋지 않은 사업장보다 신분이 보장되고 대우가 좋은 공기업의 노조가 더 강성인 현실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공기업들은 실제로 경영성과 평가 등을 앞두고서는 노사가 똘똘 뭉쳐 경영성과를 부풀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공기업들의 호화로운 경비 집행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은 증권예탁결제원은 회사의 세미나나 기념식에 참석하는 직원에게 수십만 원짜리 상품권을 뿌렸다. 중소기업은행 임원들은 요트까지 임대한 호화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런 행태가 가능한 것은 전반적으로 내부 감시시스템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기관장과 감사가 모두 ‘낙하산’으로 오는 것이 내부 시스템 미비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기관장과 감사가 자신의 정착을 위해 노조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주무 부처에 공기업의 감독 강화와 시정을 요구해도 제대로 개선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며 “공기업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정부의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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