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이상’ 자율규제 강화로 사실상 재협상 효과 겨냥

  • 입력 2008년 6월 13일 02시 58분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 협상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 협상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 방미 추가협상 뭘 어떻게 논의하나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추가 협상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쇠고기 논란’이 새로운 고비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4월 타결된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틀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재협상 카드’대신 국민의 우려가 높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반입을 막아 실리를 챙기는 ‘추가 협상’ 카드를 내밀었다.

정부가 미국 측을 추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반입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묘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국제 통상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묘안 마련해야

두 나라의 장관급 통상대표가 만나 아무런 소득 없이 헤어지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양국 간에 상당한 사전 의견조율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을 안심시키고 설득할 만한 수준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을 갖출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 당국자는 “수입위생조건 문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민간 자율규제를 통해 국민이 실질적으로 우려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추가협상에서 집중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협상을 하지 않고도 ‘사실상 재협상’에 준하는 성과를 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민간 자율규제에 대한 실효성이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자율규제를 업계에만 맡겨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이번 추가협상으로 민간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를 어떤 형태로 보장할 수 있을지 대안을 내놔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민간의 자율규제를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양국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추가협상에서도 국제 통상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민간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국제법적인 제약, 선례가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제3국 간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양국 간 협의가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국 정부가 보충 협정문, 부속서, 각서 등의 문서를 통해 민간 자율규제의 구속력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민간 자율규제에 양국 정부가 개입하는 형태가 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되므로 쉽지 않다. 양국 정부가 민간 자율규제에 대한 문서 보증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합의문 등의 형태로 공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정부에 월령표시 보장 요구할 듯

앞서 미국으로 건너간 박덕배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등 정부 대표단은 양국 민간업자의 자율규제에 관해 양국 정부가 보증하는 방안을 미국 측에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하는 이유도 미국 측과의 협상 채널을 통상장관급으로 올려 정부의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미국 수출업계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출하겠다”고 자율 결의하고 쇠고기 자체에 월령(月齡)을 표시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수출검역증명서에서 이를 확인해 ‘사실상의 정부 보증’이 이뤄지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출검역증명서상의 월령 표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이어서 미국이 선뜻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수출검역증명서에 월령 표시를 하지 않는 대신 다른 식으로 ‘보증’하는 방법도 있다. 양국 업계가 자율규제에 합의하고 제품에 월령 표시를 하면 정부 차원에서 월령 표시가 없는 쇠고기나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아예 수출입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이다.

정부 당국자는 “자율규제에 반대하는 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판로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가 법적으로 문제를 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입을 막고 이를 보증할 수 있다면 ‘사실상의 재협상’ 수준의 성과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미국이 30개월 이상 월령 표시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율규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이번 추가 협상을 통해 민간 자율규제의 실효성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국내의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내장 등의 수입을 반대하는 일부 여론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신원건 기자

■ 김종훈 통상본부장 문답

“신뢰손상 없이 재협상과 동일한 효과 내도록 노력”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13일 미국을 방문해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한미 쇠고기 추가 협상을 한다”고 밝힌 후 기자들의 세 가지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문답 내용.

―이번 협상이 재협상인가.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실질 내용을 바꾸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동일한 효과를 내는 방법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금요일부터 (한미)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을 수 있겠다.”

―이제야 미국에 가는 이유는….

“양국 외교채널 간에는 협의가 계속되어 왔다. 그 하나로 박덕배 농수산식품부 제2차관이 방미 중이다. 슈워브 USTR 대표가 (장기 출장) 일정을 정리하고 귀국을 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 제가 방미해서 책임 있게 얘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농식품부 차관은 저와 합동으로 (협상에) 임할 예정이다.”

―민간 자율규제 명문화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은….

“민간의 합의가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집행돼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 제가 가는 목적이다. 정부의 역할을 어떤 형식으로, 어떤 형태로 하는 것이 좋은가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WTO 협정 등의) 룰에 따라서 여러 가지 고려할 측면이 분명히 있다. 문서 보증을 할 경우 정부의 관여가 형식상 두드러지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런 부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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