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업계 자율결정이 바람직하지만…” 한미 모두 고심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6월 4일 03시 02분



당정협의회 앞두고 숙의한승수 국무총리(왼쪽)와 박재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시작하기 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경모 기자
당정협의회 앞두고 숙의
한승수 국무총리(왼쪽)와 박재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시작하기 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경모 기자
■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 요청 이후

《정부가 3일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을 중단해 줄 것을 미국에 요청함으로써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발표문)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사실상의 재협상에 나서기로 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는 별도로 현실적으로 반대 여론이 가장 강한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상황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대책에 대해 협상 상대국인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이에 따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

○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정부가 원하는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미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을 자율적으로 보류하는 것이다. 사실상 미국이 이전 협상을 백지화하고 전면 재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월령(月齡) 수출 제한’을 명문화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월령 제한 철폐’는 미국이 지난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얻은 뒤 한국 등 주요 수입국에 일관적으로 요구해 온 핵심 사항이다. 한미 양국이 ‘자율규제협정(VRA·Voluntary Restraint Agreements)’ 또는 ‘수출자율규제(VER·Voluntary Export Restriction)’를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입을 통제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은 전체적인 재협상이 아닌 부분 재협상으로 해석된다.

자율규제협정과 수출자율규제는 형식에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같다. 국가 간 협정 형태로 맺어지면 자율규제협정이고 협정이 아닌 정치적인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집행하면 수출자율규제가 된다.

자율규제협정이나 수출자율규제가 거론되는 것은 한미 양국이 얻을 수 있는 실리 때문이다. 미국은 양국 협상 원안(原案)을 수정하지 않은 채 한국에 즉각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되고 한국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수입 물량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자율규제협정과 수출자율규제는 정부 개입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위반하는 것이어서 국제문제가 될 수도 있다. 국제무역연구원 정재화 통상연구실장은 “이런 방안 대신 민간 차원에서 자율적인 결정을 하는 방안을 택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구속력이 떨어져 합의가 쉽게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도 상당히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일단 끝난 협상을 크든 작든 손질하는 것을 반길 리가 없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3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난 뒤 “미국 정부로서는 재협상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고 밝힌 것은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도 한국 내에서 미국 및 미국 제품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지나치게 원칙만 고수할 경우 자칫 전체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토니 프라토 백악관 부대변인이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한국 정부 측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함께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 내 여론을 감안할 때 정부의 이번 결정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미 양국의 합의 내용을 사실상 뒤집는 것으로, 앞으로 상당한 후유증도 따를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은 정부 요구에 대해 “앞으로 한미 간의 다른 협상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는 점을 이유로 미국 측이 자신들에 유리한 요구를 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비준은 난관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송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FTA팀장은 “한국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게 되면 미국 정치권이 한미 FTA 재협상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며 “미국이 자동차시장 조기개방과 노동유연성 강화 등의 추가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쇠고기 문제가 이미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선 엄중한 현실을 감안하면 경제적 측면만으로 득실을 따지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설사 경제적으로 손실이 많더라도 한미 양국이 ‘합의점’을 찾게 될 경우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갈등과 불안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의 관계자들은 “이번 파동은 일부 방송 등의 과장과 왜곡 보도로 실제보다 위험성이 증폭됐지만 어쨌든 국민 사이에 특히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양국 정부의 협의를 거쳐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된다면 국민들이 안심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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